20세기 후반 이후 과학기술의 발전 속도가 눈부시게 빨라지고 있다. 특히 최근 20년 동안 생명공학의 발전은 놀라울 정도다. 과학소설에나 나올법한 얘기들도 현실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매일같이 쏟아지는 연구성과들은 늘 연구실에 붙어있는 연구자들도 따라잡기 어려울 정도로 그 양이 방대하다.
최근 전국과학전람회 50주년 기념 강연회에서 어느 고교생이 질의한 노벨상 수상 비결에 대해, 1996년 노벨화학상 수상자였던 영국의 헤럴드 크로토 교수는 창의적 연구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과학은 창의성에 그 힘이 있는 것이다. 아무리 좋은 결과라도 2등은 의미가 없다. 우리나라의 경제발전이 현재 상당한 수준에 도달했음에도 한 발 더 나아가기 어려운 이유 중 하나가 원천기술의 부족이다. 아무리 핸드폰을 잘 만들어 수출을 많이 해도 우리가 얻는 순 이익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핸드폰의 원천기술을 보유한 어느 미국기업에 판매액의 일정 비율을 기술료로 지불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 회사는 앉아서 매년 수십억 아니 수백억달러를 챙기는 셈이다. 그만큼 원천기술은 중요하다.
지난 2월 황우석 교수팀이 세계 최초로 체세포와 난자만으로 인간배아줄기세포를 만들어 내는데 성공했다. 그동안 사람을 포함한 영장류의 배아줄기세포는 과학적으로 불가능한 것으로 알려져 왔기 때문에 황 교수의 연구성과는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 우리나라로서는 산업적으로 가능성이 매우 큰 원천기술을 확보했다는데 큰 의미를 둘 수 있다.
그가 심혈을 기울여 온 줄기세포 연구는 난치병으로 죽어가거나 고통을 받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생명과 건강, 희망을 줄 수 있기에 매우 중요하다. 우리나라뿐만 아니고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 가까운 일본과 중국의 과학자들도 줄기세포의 엄청난 기술적, 경제적 잠재력을 현실화하기 위해 오늘도 밤잠을 설치고 있다. 인간윤리, 도덕적 이유로 정부의 지원을 제한했던 부시대통령도 최근 치료목적의 줄기세포 연구에는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미 대선과 함께 실시된 캘리포니아 주민투표에서는 30억 달러의 주(州) 기금으로 줄기세포 연구를 지원하는 법안이 통과되기도 했다.
그런데 우리나라 줄기세포 연구의 대명사 황우석 교수는 요즘 너무 바쁘다. 연구실에서 연구하느라 바쁜 것이 아니라 외부 초청강연, 학회 기조연설, 각종 회의 등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보통 사람 같으면 엄두도 못 낼 정도의 강행군이다. 황 교수가 배아복제 분야에서 세계적인 연구업적을 쌓았고 그 연구 결과의 파급효과가 워낙 지대한 까닭에 그를 초청하여 한 마디 들으려는 사람들의 심정을 모르는 바가 아니다. 하지만 그는 과학자다.
“염려했던 UN의 배아복제 금지 논란이 잘 정리돼 다행입니다. 이제 줄기세포 연구를 위한 실험에 몰두하겠습니다.” 최근 황우석 교수가 미국에서 열린 배아복제와 관련해 UN 회의에 참가하고 귀국한 뒤의 인터뷰 내용이다.
황 교수는 이제 50대 초반으로 한창 연구할 나이다. 그가 연구실에 있는 시간이 많을수록, 좋은 연구업적이 이어질 것이고, 그만큼 개인의 명예는 물론 국민 경제에도 기여하게 될 것이다.
우리나라는 선진국에 진입하기 위해 각종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황우석교수후원회도 만들어졌다. 국민들의 과학기술에 대한 관심이 어느 때 보다 높아진 결과이다. 우리는 이제 능력 있는 과학자가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여 세상을 변화시키는 일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창의적 연구만이 세상을 바꿀 만한 연구성과를 낼 수 있다. 진정 황우석교수를 노벨상 후보로 만드는 것은 각종 이벤트를 만들어 그가 연구 외의 일로 바쁘게 해주는 것이 아니라 창의성이 있는 원천 기술을 개발할 수 있도록 그를 연구실로 돌아가도록 해주는 것이다. 황교수를 그냥 내버려두자. 황교수의 세계적인 업적이 아무런 결실을 얻지 못한 채 잊혀질까봐 걱정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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