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로에 낙엽이 뒹구는 모습을 보며 다른 해보다 더한 을씨년스러움을 느끼는 것은 신행정수도 문제로 우리지역이 온통 심난한 상황에 놓여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아마도 끝이 보이지 않는 불황의 여파가 아닐는지?
지난 주말은 깊어가는 가을의 공허로움을 달래주는 작은 감동으로 가슴 따뜻함을 느낀 날이었다.
으레껏 이맘때쯤 주말이면 각종 초청장에 청첩장이 쇄도하여 그 날도 가벼운 주머니를 털어 봉투를 만들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만나서 인사한지 얼마 안 되는 모 경찰의 최고간부가 상을 당했다는 알림이었다. 경사도 아니고 애사이니 당연히 찾아 조의를 표하는 것이 도리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잠시동안 망설여졌다.
지위 높으신 분이니 과연 얼만큼 부의를 해야하는지 머뭇거렸지만 내 처지에 맞게 봉투하나를 더 만들어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장례식장입구에 들어서니 ‘조화와 부의는 사절합니다 ’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나는 으레껏 인사로 적어놓은 글귀려니 생각하고 문상을 마치고 접수처에 들르니 정중히 사절하며 방명록에 서명만 받는 것이 아닌가.
기관장으로 그것도 경사도 아닌 애사에 작은 성의를 표하는 것을 거절한다는 것은 쉬운 일인 것 같지만 매우 어려운 결단을 내렸구나 하는 생각에 가슴속으로 따사로움을 느꼈다. 더구나 네 형제 중 막내인 것 같았는데 아우의 생각에 동의해준 형들의 사려 깊은 마음도 보통사람이 할 수 있는 쉬운일은 아니라는 생각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지난번 결혼식 축의금으로 받은 돈을 늘린 것이 100억원이니 200억원이니하여 국민을 실망시켰던 전직대통령의 아들이나 정년을 앞둔 우리지역의 모 고위 공직자가 6개월사이에 두 자녀를 서둘러 혼인을 시킨 경우와는 너무나 다른 경우였다.
요즘처럼 부패가 만연하고 각박한 세상에 위빈행정의 본보기가 되는 일이 아니겠는가?
지도층 사람들이 온갖 미사여구를 동원하여 애국이니 애향이니 개혁이니를 부르짖고 있다. 그러나 참된 개혁이나 백성을 위하는 일은 거창하고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와 같이 주위 현실에서부터 바른 마음을 가지고 바꿔나가고 실천해 나가는 것이 바른 개혁이라고 생각한다.
일찍이 다산 정약용 선생께서도 식위 정수라 하여 백성들이 편안하게 먹고사는 것이 나라를 다스리는데 근본이 된다고 외치셨거늘 요즈음 지도층에 있는 사람들의 이기주의와 정략주의적으로 행동하는 것을 보면서 자신의 주변부터 깨끗이 하고 작은 일부터 백성을 위하여 실천해 가는 것이 올바른 지도자가 갖추어야할 참된 덕목일 것이다.
부의 사절!
자신의 마음을 비우고 주위사람들을 편안하게 해주며 마음만을 받아들인 모 경찰간부의 행동에 아낌없는 박수갈채를 보낸다. 이러한 공직자들이 하나둘 늘어 갈 때 우리의 미래는 아직 희망이 있다는 생각을 하며 높고 파란 가을하늘을 보았다.
웬지 온종일 기분 좋은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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