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 수 년 계속하다 보니 이제는 습관이 되어버린 새벽운동이 지금에 와서는 운동이라기보다는 지역 어른들의 안부를 묻는 일상의 하나로 자리 잡은 것 같습니다. 이제는 제법 아침저녁으로 쌀쌀해져 새벽공원의 벤치나 마을 거리에서 마주대하는 어르신들의 어깨가 점점 움츠러 드시는 것 같아 겨울이 코앞에 와 있음을 실감합니다.
뛰다 걷다 하면서 마주 치는 어르신들이 안부를 묻다보면, 어느덧 복지관이 있는 주공 2단지에 다다릅니다. 사실 이 때쯤 되면 마음한구석이 여간 무거워 지는 게 아닙니다.
주거환경을 비롯한 제반시설들이 취약하기 때문에 한 눈에 봐도 열악한 생활환경에서 생활하는 저소득층 주민들이 사는 지역이라는 것을 누구나 느낄 수 있는 것이 가장 먼저 가슴에 울림을 줍니다. 이 지역에 살고 있는 어린아이들이 가난하다는 이유로 상처받는 일이 없어야 할 텐데 라는 바람을 담아 간절히 기원하는 하루하루입니다. 옛말에 “가난은 나라님도 고칠 수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가난을 탈피하려면 개인의 자립의 의지나 노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말일 것입니다. 지당한 말이라 생각됩니다. 그러나 지당한 생각임에도 불구하고 21세기의 패러다임 아래에서는 빈곤에 대한 생각이나 시점도 많이 변화 하였습니다.
즉 “가난은 나라가 아니면 고칠 수 없다”는 것이 정설로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이 그것입니다. 가난이라는 한계 상황에 도달하게 되기까지의 사회 서포트 시스템의 문제를 다 잡아야 한다는 생각이 준거 틀의 핵심을 이룬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현 정부도 이러한 발상으로부터 출발하여 사회 저변을 이루는 서민의 생활안정을 위해서 많은 정책과 제도를 구상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아무리 훌륭한 정책이나 제도라 할지라도 그것의 시행에는 막대한 재정적 부담과 더불어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로 하다는 것은 이론의 여지고 없는 사실입니다.
겨울이 바로 우리들의 앞으로 다가와 있음을 느낍니다. 올 겨울은 특히나 추위가 엄습할 것 같다는 예보도 있기에 많은 걱정이 앞섭니다.
경기가 어렵기 때문에 어려운 이웃에 도움을 주는 손길들이 줄어들지 않을까 많은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이렇게 생각해 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경제가 어렵다고 아우성이고 우리들도 이렇게 어려운데 주위의 소외되고 어려운 계층의 우리 이웃들이 얼마나 더 고생되고 어려울까?
올 겨울 아무리 추운 추위가 몰아친다 해도 주머니에 넣었던 따뜻한 손길과 같이 우리들의 따뜻한 마음들이 모여서 주위의 어려운 이웃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용기가 있다면 그깟 추위야 무슨 문제가 있겠습니까?
진정 추위보다 더 우리를 더 움츠러 들게 하는 것은 얼어붙은 우리들의 마음이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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