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학년만 맡아 왔는데 기초인 글자와 숫자를 가르쳐야 하는 1학년인데다 1주일은 오전 2시간 다음주 3, 4교시 2시간을 교실에서 보내야 하는 1, 2학년의 교대였다.
글자를 쓰고 읽는 일에 심혈을 기울이고 지도했으나, 다른 반은 다 잘 아는 것 같은데 우리 반 아이들만 모르는 것 같았고 이러다간 모든 아이들을 한글 미해독자로 만들 것 같아 조바심도 생겼다. 전체 어린이를 대상으로 즉석 채점 100점짜리는 하교시키고, 또 읽고 쓰게 시키며 받아쓰기를 반복했다. 돌려보내고 매일 제일 늦게 가는 여자 아이 한 명만 남았다.
“자, 희정이 너 혼자 남았구나! 어제 100점 맞은 것 엄마 보여 드렸니?”
“예.” “무어라고 하시든?” “잘했다 칭찬해 주셨어요.” “네 기분이 어땠지?” “좋았어요.” “그럼 지금부터 열심히 하여 100점을 맞아 가지고 가야지?” “예.”
나는 낱말을 부르고 희정이는 받아쓴다. 쓰는 것은 넘어가고 틀린 것은 책을 보고 열 번을 쓰게 시켰다. 이를 반복하기 얼마가 지났을까? 고분고분 시키는 대로하던 희정이는 “아빠, 배고파. 아앙.” 하고 목청 높여 우는 것이 아닌가? 시계를 보니 1시 40분. 불러주고 쓰기를 시키느라 시간이 가는 줄도 몰랐다. 눈물 닦아주고 달래어 학교 후문 구멍가게로 달려가 우유와 빵을 급히 사다 둘이서 먹었다.
10개를 불러줬다. 언제나 그렇듯이 6개만 맞았다. 4개를 고쳐 쓰게 하고 새 종이에 다시 쓰게하여 색연필로 큼직큼직하게 동그라미를 치고 100점이라 써서 “오늘도 100점이다, 이제 가거라.”
아까와는 달리 시험지를 손에 들고 깡충깡충 뛰어서 달려가는 희정이의 뒷모습을 보며 “엄마 오늘도 100점 맞았어” 소리치며 싸리문을 들어설 희정이의 모습을 떠올렸다.
이듬해 3월 ○○초등학교로 전근을 갔다. 전근 온 지 2년째 되는 어느 날 편지 한 통이 날아왔다. 3학년이 된 희정이지만 서투른 문법으로 ‘선생님이 보고 싶은 데 볼 수가 없다. 선생님 때문에 글을 알아 편지를 쓴다’는 내용이었다.
1년 후 다시 태안 학교로 들어가게 되어 희정이를 찾았지만 희정이는 이 세상의 아이가 아니었다. 5학년이 되었을 희정이다. 그것을 살고 갈 것을 그 어렵게 글자를 알아 무엇에 썼으랴! 고작 “선생님 때문에 글자를 알아 고맙습니다”라는 가슴속에 지울 수 없는 보은의 편지 한 통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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