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습과 미니스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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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습과 미니스커트

  • 승인 2004-11-09 16:55
  • 최충식 논설위원최충식 논설위원
아무리 평이하게 말해도 이미 논쟁이 되고 있었다. 싸움을 걸지 않아도 선전포고나 다름없었고 소신은 광신으로 컬러링(윤색)되기 십상이었다. 위헌적인 위헌 판결 이후 일어난 변화다. 여기에 부응하느라 거의 매일이다시피 사설 둘 중 한 꼭지를 행정수도 관련기사로 써대고 있다.

때로 그것은 논쟁도 아무것도 아니었다. 옛 '사상계'의 화려한 논쟁들을 재독하면서 문득 그런 생각을 하게 됐다. 좋은 의미로, 수십 년이 흘렀어도 사람을 흥분시키는 함석헌 선생과 윤형중 신부의 지상논쟁 '할말이 있다'와 '할말이 없다'를 읽으면서는 심히 부끄러움을 느꼈다.

비록 장벽과 철조망이 둘러쳐졌고 뜻하지 않은 지뢰밭도 있지만, 필자는 논쟁의 힘을 믿는 사람이다. 가령 자연과학이냐 정신과학이냐 하는 반실증주의 논쟁, 정치사냐 문화사냐 하는 역사학 방법론 논쟁 등 위대한 논쟁들을 잘 알고 있다. 역사는 싸우면서 진보를 이룩하고 발전하기도 한다.

그런데 정작 큰 벽은 따로 있었다. 사슴을 말이라 일컫고 국가대계를 '꼼수'라고 우기는 소위 광화문네거리의 신문사들도 그 탄탄한 벽의 중심을 이룬다. 대전충남민언련 토론회의 표현을 빌려 "저널리즘의 기본원리조차 망각"한 처사임은 분명한데, 스스로 고양이를 호랑이라 억지부리지 않았는지에 대해서는 솔직히 자신이 없다. '바람직하다'와 '바람직하지 않다'로 간단히 재단하기엔 너무 엄청난 아젠다가 행정수도였다. 국민(독자) 입장에서도 객관적 사실주의와 주관적 가치판단이 모호한 것이 행정수도 논쟁이다.

구성원 모두가 이해당사자가 됐고 자신의 이익이 당위가 되어버린 마당에는 말이다. 성찰의 차원에서 말하면 객관성 개념은 난도질당했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관습이 헌법을 짓누름으로써 언론이라는 시스템이 보인 가치부재의 혼란은 극에 달했다. 대신에 거두절미 아니면 침소봉대가 있었다.

그나마 빌 코바치와 톰 로젠스틸의 '저널리즘의 기본요소'에서 힌트와 용기를 얻어 공정성이라든가 균형을 재해석하는 중임을 고백하고자 한다. 말의 어떤 부분을 자른 텍스트도 중요하지만 전체 내용의 컨텍스트도 중요하다는 전제에서, 위헌 판결이 주는 메시지도 되도록 그리 해석하고 싶다.

그 중 하나는 수도 서울이 갖는 위상을 새삼스레 확인해 줬을 뿐이라고 굳게 믿는 것이다. 그들의 얄궂은 판단은 국왕을 정점으로 한 관료적 중앙집권국가를 인정한 봉건시대의 반열에 넣을 수 있다. 부인해봤댔자 거기에 벌써 정치적 함의까지 있는 것이다.

이쯤에서 명료해지는 것은 다시 또 공청회 혹은 찬반론의 함정에 매몰되어 시각교란을 일으키지 말자는 바로 그 점이다. 진보와 보수를 자처한 두 진영도 집권 대 분권의 싸움에서 일탈한 지 오래다. 헌법재판소도 대놓고 정책 자체가 잘못됐다고 한 적은 없다. 판결에는 과거만 있지 미래가 없다.

두 번은 속지 말자. 어디 길을 막고 물어 보라. 서울 개포동 아파트 한 평으로 지방의 소형 아파트 한 채를 너끈히 사는 게 정상적인 나라꼴인지를. 행정수도이건 이름표를 바꾼 행정수도이건 '관습상' 여당은 위헌 요소를 빼고 추진하고 야당은 위헌 요소를 빼면 동의할 일이다. 쩨쩨하게 굴면 그게 꼼수다.

정치가 하는 일이 무엇인가. 민의의 이름으로 여론 뒤에 비겁하게 숨지 말라. 자크 아탈리의 '21세기사전' 식 정의로 '정치'란 "함께 살 수 있는 방법을 알려 주고, 소득을 재분배하고, 사회경제의 게임규칙을 정해 주고,… 파워게임을 다스리고, 계획을 제안하고 노력에 의미를 주기도 한다."

본질이 중요하다. 이 문제에서 가져야 할 태도는 가치중립 아닌 가치연관일 수밖에 없다. 전략상 행정수도 논쟁은 미니스커트와 같아야 하는지도 모른다. 적당히 길어 중요 주제를 커버하고 적당히 짧아서 주목에 어필해야 한다는 점에서. 더 이상은 '섹시'해지면 곤란하다는 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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