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죽했으면 우리네 할머니들은 하염없이 내리는 흰눈을 보면서 저 눈이 모두 흰밥이었으면 좋겠다고 했겠는가. 나는 서울의 보통 살림살이 가정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그 때 할머니는 가끔 밥이 남아서 쉬어졌을 경우 그것을 물로 빨아서 죽을 쑤어 나에게 먹이곤 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당시 자주 배가 아팠던 기억이 있다.
그때마다 할머니 손은 약손이라며 할머니는 나의 배를 쓰다듬어 주었는데 신기하게도 배가 아파서 약을 먹어본 기억이 없다. 그러다가 도저히 먹을수 없을만큼 밥이 상하게되면 할머니는 묽게 풀을 쑨 다음 흰 광목 소청에 풀을 먹이고 다듬이질을 하였는데, 그 날 밤에 잠자리에 들면 까실한 흰 요와 베갯잇에서 구수하고 시큼한 밥풀냄새가 났다.
그 때 나는 우리 집이 가난하다는 생각을 한번도 가져본 적이 없다. 앞집이 그렇게 살았고 옆집도 그렇게 살았다. 거의 매일 거지가 자기 집처럼 대문을 밀고 들어와선 깡통을 내밀면 할머니는 군말 없이 먹다 남은 찌꺼기나마 조금 떼어주곤 하였다. 어쩌면 그 거지는 온종일 다리품을 팔면서 우리 동네 살림살이를 모두 알고있었으리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요즘 나는 연구실에서 정체불명의 전화를 자주 받는다. 무슨 무슨 장애인복지센터라고 하기도 하고 도서벽지에 책을 보내준다고 하기도 한다. 결국 어려운 사람을 도와줄 것이니 돈을 좀 내놓으라는 얘기다. 야속하다 하겠지만 나는 거두절미하고 끊어버린다. 그 옛날 우리 집을 들락거리던 거지는 비록 밥 찌꺼기를 얻기 위해서 다리품을 팔아야 했고 나에게 가끔 씽긋 웃어주기도 하였다.
없는 살림에 좀도리쌀을 모아서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었던 그 시절, 그 때 우리는 돈으로 살 수 없는 많은 것을 갖고있어서 가난하다고 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나는 가난하다. 쥐꼬리만한 교수 봉급도 그러하고 그것마저 염치없이 달라는 사람들이 있어 그러하고 돈을 주고 사지 않아도 가질 수 있는 따뜻한 마음마저 잃어버려 나는 가난하다.
곧 첫눈이 내릴 거다. 하늘에서 내리는 그 첫눈이 모두 진실이고 사랑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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