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그건 우리가 인과관계를 제대로 규명하지 못해서일 뿐이다. 자연계에나 가치의 세계에나 거기엔 질서라는 것이 있다. 그리고 그 질서를 제대로 파악할 줄 알아야만 비로소 분별력이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분별력이 없으면 그것은 바로 가치의 혼돈이요 인식의 교란일 뿐이다.
2004년 10월 21일 오후 2시28분. 대한민국 헌법재판소. 그곳은 완전한 카오스의 세계였다. 그럴 수도 있다고 얼핏 생각은 했지만, 그래서 신행정수도 입지가 결정되었을 때 잔칫상에만 머물러 있지 말고 거친 들판으로 나와 수도권과 일부 기득권세력에 미리 대비하자 했지만 결과가 이처럼 참담할 줄은 몰랐다.
즐겨 사용하는 커피 잔에 이런 농담이 적혀있다. 세계에서 가장 얇은 책은 무엇일까? 그것은 영국의 요리책이다. 세계에서 제일 요리솜씨가 없는 게 영국인이고 영국의 음식 종류도 별로 없으니 요리책이 얇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얇은 책은 나라마다 다른 듯하다. 우선 꼽히는 게 아르헨티나의 경제정책에 관한 책이다. 아르헨티나 경제는 손을 댈 수 없을 만큼 엉망인 데다 역대 정부를 통해 경제정책다운 게 없었다는 것이다. 미국의 미술사책도 얇다. 미국은 역사도 짧지만 미국만의 독자적인 미술을 만들어 가기 시작한 것도 오래되지 않기 때문이다.
인도의 위생학도 그렇다. 인도는 불결하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오스트리아의 유머 책도 얄팍하다고들 말한다. 오스트리아인은 유머를 모르기 때문이다. 스페인 사람들이 들으면 틀림없이 화를 낼 일이지만 스페인의 근면에 관한 책도 얇다고들 본다. 손재주가 없는 포르투갈 사람들의 기술책도 얇다고 한다. 긴 겨울을 나는 핀란드인은 말수가 적을 수밖에 없으니 대화법 책도 얄팍하단다. 또 유태인을 미워하는 사람들이 꾸며낸 얘기겠지만 유태인의 직업윤리에 관한 책도 얇다. 술을 좋아하는 러시아인들에겐 절주에 관한 책이 없을 법하다.
일본 사람들이 일부 자인한 사실이지만 일본의 역사인식에 관한 책도 얄팍하다. 그리스의 조직론에 관한 책도 얄팍하다고들 한다. 그리스인은 일머리를 제대로 세우고 체계적으로 일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지난 번 올림픽 개막 전날까지도 도로포장을 한 그들이다. 그러고 보면 한국에도 얄팍한 책들이 있을 것이다. 특히 정치인의 말은 있어도 그들의 행동은 경멸의 대상이니 정치도덕에 관한 책은 표지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이제 정치인들이 그동안 차려낸 말의 성찬을 어떻게 추슬러 가는지 지켜볼 일이다.
지방신문들은 연일 시커먼 활자들을 1면에 토해내고 있다. 곳곳에서 폭발하는 충청민심을 생생하게 전하고 있다. 아무리 가치 혼돈의 시절에 이리저리 부대끼며 살고 있다지만 세상일에는 경중이 있고 선후가 있으면 본말이 있는 법이다. 그래서 그 차이를 알아보고 거기에 맞게 반응해야만 바른 자세가 된다. 가벼운 것을 중요한 것인 듯, 중요한 것을 가벼운 것인 듯, 또는 그 둘의 차이가 마치 없다는 듯 얼버무릴 경우 그것은 지역에 대한 또 다른 배반의 역사가 된다. 정부와 정치권은 우물쭈물하며 시간만 보낼 일이 아니다. 영국의 극작가이며 소설가, 비평가인 조지 버나드 쇼는 자신의 묘비명에 다음과 같은 글귀를 남겼다.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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