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개혁은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거기에는 크고 작은 진통이 따르게 마련이다. 지금 우리는 다시 한번 그 진통을 겪고 있는 중이다. 국가의 새로운 발전과 미래를 열어가기 위한 불가피한 과정이다. 개혁이 이 시대의 당위로 등장한 지는 이미 오래이며 그 중심에 바로 행정수도 문제가 있는 것이다.
행정수도는 어느 지역에 선심성 특혜를 주기 위한 것이 아니다. 서울의 이상 비대화로 인한 누적된 병폐를 해소하고 나라의 균형발전과 경쟁력 강화를 통해서 명실상부하게 선진국으로 도약하기 위한 국가적 차원의 필수 과제로 나온 것이다. 그러나 이미 돌이키기 어려운 단계에까지 진척된 행정수도 건설에 대하여 뜻하지 않은 헌법재판소의 위헌판정은 모두에게 예상치 못한 큰 충격을 주었고 판정에 대한 비난여론은 갈수록 더 비등하고 있다.
엄존하는 성문헌법을 제쳐놓고 관습헌법이라는 해괴한 논리를 내세워 결과적으로 헌법을 새로 제정하는 월권을 자행한 사법 쿠데타라는 지적이다. 그래서 ‘헌재의 위헌 결정은 위헌’이라는 비판이 많은 사람들의 호응을 얻고 있는 실정이다. 문제는 이러한 헌재의 잘못을 제어하고 바로잡을 제도적 장치가 없다는 점이다. 행정수도로 상징되는 이 시대 개혁작업이 커다란 난관에 부딪히고 있다.
사태를 이 지경에 이르게 한 데 대하여는 무엇보다 정부 여당을 탓하지 않을 수 없다. 개혁을 추진하라고 대통령으로 뽑아주고 국회 과반의석도 만들어 주었는데 돌아온 결과가 이 모양이면 그들의 국정운영 능력에 심각한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더욱 한심스러운 것은 보수로 자처하는 한나라당의 작태다. 정부가 하는 일이 잘못되도록 사사건건 국정의 발목이나 잡고 늘어지는 것이 진정 국민을 위한 정치인가 묻고 싶다. 자기네들이 통과시킨 특별법이 위헌판정을 받았는데 박수를 치며 환호하다니,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노릇이다.
행정수도 건설을 똑같이 선거공약으로 내걸었고 차질 없이 추진토록 하겠다고 거듭 확인까지 해놓고서도 돌아서서는 한사코 이를 무산시키려고만 들었던 기만행위는 또 무엇으로 변명하려는가. 헌재 판정 이후 직접 피해를 입은 지역의 민심이 들끓는 가운데 한나라당 주요 정치인들은 ‘투기꾼들이 번 돈을 거두어다가 피해주민 보상하면 된다’ ‘총리가 책임진다고 했으니 총리 개인돈으로 보상해라’는 등의 말을 서슴없이 하고 있다. 이것이 과연 말마다 ‘민생’을 내세우며 국민을 위해 일한다고 하는 이 나라 정치인의 입에서 나올 수 있는 말인지 믿어지지가 않는다.
분노한 민심은 행정수도와 관련된 일련의 사태에 대하여 이를 국민을 대상으로 저지른 ‘정치권의 만행’으로 규탄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지금부터라도 정치권은 대오각성하여 역사의 순리를 거스르지 말아야 한다. 그렇게도 내세우던 ‘상생’의 정치는 어디로 갔나. 모든 것이 내가 하면 옳고 다른 사람이 하면 그르다는 오만과 편견부터 고쳐야 한다. 개인의 야망이나 당익을 앞세워 국가대계를 그르쳐서는 안 된다.
수도는 서울만의 수도가 아니요 대한민국의 수도임을 명심할 일이다. 이 시대 개혁의 상징적 핵심과제인 신행정수도 건설은 중단 없이 추진되어야 마땅하다. 지금 정치권의 과제는 이에 대한 대안이 아니라, 계속 추진하는 방안을 찾는 일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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