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수도건설은 수도권의 비대화 해소 및 국토의 균형발전 그리고 지역분권화를 위해 꼭 필요한 일임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특히 그동안 여러 면에서 소외되어왔던 충청권의 입장에서는 행정수도건설이야말로 지역발전을 위해 결코 놓칠 수 없는 절호의 기회였다. 이전부지 마저 확정되어 곧 보상이 이루어질 시점이었기에 행정수도 건설의 경제적 파급효과에 거는 기대감은 그 어느 때보다도 컸었다.
그런 점에서 이번 위헌결정은 너무나 뜻밖의 결과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기에 그 충격은 더욱 컸고 우리를 좌절케 하는데 충분했다. 규탄대회에 참가하여 큰소리로 그 부당성을 외쳐볼지라도 울분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성싶다.
그러나 법치국가에서는 헌재의 결정에 따를 수밖에 없다. 탄핵기각은 찬성하면서 위헌판결은 잘못이라고 하는 것은 올바른 태도가 아니다. 이쯤에서 우리는 헌재의 결정에 대한 시시비비보다는 관습헌법을 운운하면서 다소 궁색한 이유를 담고 있는 헌재의 결정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를 보다 냉정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헌재는 이렇게 판단했을지도 모른다. ‘행정수도이전은 충청권에는 분명 명분 있고 의미 있는 일이겠지만 수도권에는 달갑지 않은 일일 수도 있다. 이같이 지역 간 이해가 엇갈린 가운데 정부와 충청권에서는 국토균형발전이란 큰 축에서 행정수도이전을 어떻게든 추진하려 하고, 수도권에서는 이를 적극 저지하려 함으로써 국론분열현상 내지는 심각한 지역이기주의가 생겨날 우려가 있다. 그러므로 이 문제는 국민적 합의 도출을 위해 더욱 노력할 필요가 있다.’
그동안 헌재의 결정이 있기까지 정부의 추진과정을 살펴보면 그 같은 우려를 살만한 점도 없지 않다. 정부가 행정수도이전을 정말 최우선과제로 추진하려 했다면 보다 지혜롭게 대처했어야 했다. 행정수도건설은 정치 사회 경제적으로 이해관계가 첨예한 중대사로서 정부 여당의 힘만으로는 결코 원만히 추진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점에서 정부 여당은 야당의 도움을 받는데 더욱 힘썼어야 했다.
그런데 정부에서는 행정수도건설에 대한 야당의 협조를 구하려는 노력보다 야당이 반대하는 정책들을 들고 나와 강행하려 했다. 예컨대 국보법 폐지문제만 보더라도 그렇다. 헌재에서 이미 합헌이라고 판정하였고 야당 또한 극구 반대하고 있는 사안인데 그렇게 열성을 다할 만큼 시급한 일이었는지 의문이 간다. 이밖에 과거사청산 작업이나 호주제 폐지 등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문제들은 행정수도건설에 대한 합의를 도출한 이후에 추진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그렇다고 이미 지난 일만을 탓하고 있을 순 없다. 앞으로가 중요하다. 헌재의 위헌판결에 불만을 표현하기보다는 행정수도건설추진과정에서 심각한 타격을 입은 충청권 주민들을 아우르는 적절한 대책을 찾는 것이 가장 우선되어야 할 과제다. 아울러 정부는 행정수도 건설문제를 원점에서 다시 시작해야 할 것이다. 행정특별시 조성 등 급조된 대안이 아닌 보다 장기적인 안목에서 세심한 검토를 거친, 행정수도건설 본연의 취지를 달성할 수 있는 합리적 대안을 마련하여야 한다.
그런 다음 정략적이 아니라 진정 국가의 미래를 생각하는 차원에서 야당과 수도권 주민들에게 그 대안을 제시하고 당위성을 호소해야 한다. 그렇게 될 때 부정적인 수도권의 민심을 되돌릴 수 있고 전 국민의 호응 속에서 우리의 희망인 행정수도 건설을 차질 없이 추진할 수 있으리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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