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수 편집부국장 |
눈이 시리도록 푸르른 이 가을날 어이없게도 충청지역민들은 시퍼렇게 멍든 가슴을 부여잡고 연일 울분을 토해내고 있다. 헌법재판소의 위헌 판결이 몰고온 처참한 결과다.
그도 그럴것이 헌재의 판결은 충청민들에게 엄청난 정신적, 물질적 피해만 안긴채 삶에 대한 희망, 미래에 대한 기대를 송두리째 앗아가 버렸기 때문이다. 짓밟힌 자존심, 상실감, 허탈감, 배신감등 정신적 고통은 고스란히 지역민들의 몫이 됐고 지역발전을 위한 모든 계획은 한순간 뒤죽박죽 돼 버렸다.
예정지였던 연기, 공주지역은 말할 것도 없고 정치권, 행정기관, 금융기관, 건설사, 대학, 대덕밸리등 정치 경제 사회 문화분야 가리지않고 생채기 투성이다. 거대한 태풍이 휩쓸고 간뒤의 쑥대밭에 다름아니다.
이런 전차로 지역민들이 토해내는 거친 울분은 현 상황이 만들어낸 지극히 당연한 결과다. 그 몸짓 또한 예전의 점잖고 순진하며 속으로 인내하는 그런 모습이 결코 아니다. 결연하다 못해 비장함마저 배어 있는 생존의 몸부림 그 자체인 것이다. 잠재돼 있던 참(眞) 충청민심의 발로가 아닌가 싶다.
그러나 이같은 엄청난 사태를 맞았는데도 이런 충청민심의 이면에 지극히 정략적이고 이기적이며 무책임하고 눈치보기식의 냉소적인 또다른 숨겨진 민심이 엄연히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충남지역 여·야 국회의원들의 긴급간담회에서 보여준 정치인들의 무책임한 행동이 그 한 예다.
당리당략에 의한 정쟁이 전부인양 원색적 비난에 이어 정파간 책임공방으로 비화된 이날 간담회는 이들이 과연 근본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의지가 있는지조차 의문이 갈 정도였다. 자신을 뽑아준 지역민들의 민심과는 동떨어진 역시 ‘그들만의 마음(?)’인 듯 하다. 충남도내 일부 시·군 단체장들의 눈치보기식 어정쩡한 태도 역시 또다른 예다.
사태가 급박하게 돌아가는데도 ‘오면 좋고 아니면 말고’식의 관망자세는 같은 지역민의 입장에서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다. 민심의 흐름을 봐가며 신중하게 대처하겠다는 깊은 뜻(?) 역시 숨겨진 민심의 하나는 아닌지. 대전시의회 의장과 일부 의원들의 몰래한 일본 방문도 이런 민심의 한 종류로 손색없어 보인다.
‘외국의 지방의회와의 약속’이어서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들끓기 시작한 민심을 뒤로 한 채 소리소문없이 외유를 강행한 과감한 이들의 행동을 이해하기엔 내 자신이 너무 속좁기 때문일까. 의장이 고아원이나 양로원 문턱에만 가도 보도자료까지 내는 그들의 평소 모습과는 너무 달라 보이기에 더욱 그렇다.
하지만 ‘처음부터 안 올 줄 알았다’ ‘나라가 빈털터리인데 그렇게 큰 돈이 들어가는 사업을 왜 하려는지 모르겠다. 차라리 그 돈으로 도로나 몇 개 더 놓지’ ‘다끝났는데 이제와서 이런다고 뭐 달라지나’라는 식으로 만연돼 있는 같은 주민사이의 냉소적 자포자기식 비아냥도 또다른 충청민심의 도도한 한 흐름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는 점이 무엇보다도 곤혹스런 부분이다.
행정수도 이전은 몇백년 아니 몇천년만에 찾아올까 말까한 지역발전의 호기이자 국가적 소명과제다. 그 기회가 지금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고 있다. 여론마저 수적, 양적으로 충청지역을 열세로 몰아가고 있다. 이런 상황이기에 지역민들의 대응과 노력 여하에 따라 그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 때문에 지역민들은 꺼져가는 불씨를 어떻게든 살려보겠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한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이다. 또 꼭 그래야만 한다. 또다른 충청민심을 경계해야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후대의 비난에서 벗어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그래서 자명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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