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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그 자리에 있으니까 그것이 정동인 줄 알고, 저것이 덕수궁의 전부인 줄 알고 있지만 사실 정동과 덕수궁 만큼 역사의 풍파를 겪으며 축소된 애환은 없다.”
미국 대사관 신축계획을 반대하며 시작한 정동과 덕수궁에 대한 연구물이 책으로 출간됐다.
근대건축사학자 김정동(金晶東·56) 목원대 교수의 ‘고종황제가 사랑한 정동과 덕수궁’은 ‘정동의 구역은 어디인가. 덕수궁은 현재 우리가 보는 그곳뿐인가’하는 물음에서 시작한다.
저자는 “경복궁 복원계획이 문화재청 주도로 어느 정도 윤곽이 잡힌 것처럼 덕수궁도 역사적 근거에 기반을 둔 복원이 이뤄지길 기대한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저자가 보는 정동과 덕수궁은 어떤 곳일까?
그는 우선 정동(貞洞)에 대해 그는 ‘정숙과 안녕의 공간’이라고 정의한다. 조선 개국초 이성계가 우물이 있는 마을 ‘정동’에서 강씨를 만났고, 강씨가 죽은 후 왕실이 거주하는 한양안 정동에 강씨의 무덤을 썼다.
임진왜란 뒤에는 조선 왕실이 잠시 자리잡은 곳이기도 했으며 개화기를 겪으며 양인촌(洋人村)이라는 별명을 얻을 만큼 외국공관이 밀집하기 시작했다. 주한 영국대사관과 러시아대사관이 지금도 정동에 자리잡게 된 사연도 역사는 이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정동과 인접하거나 겹치는 덕수궁(德壽宮)은 고종이 재위중 신궁(新宮)으로 조성한 곳이자 당시 혼란한 국내외 정세 속에서 고종은 재위후 23년간 이곳을 떠나지 않을 만큼 매우 사랑한 곳이다.
이와 함께 저자는 정동과 덕수궁의 권역에 대해 “정동 일대와 덕수궁은 대부분이 겹치는 구역이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함께 축소됐다”며 “덕수궁은 현재 구역의 약 3배 가량 넓이로 미대사관 신축이 추진되던 옛 경기여고, 덕수초등학교 자리에 덕수궁 영성문이 있었고, 정동극장 일대에는 중명전이 있었다”고 말한다. 이런 역사성을 살펴 덕수궁 권역이 복원돼야 할 것이라는 것이 저자의 주장.
230여 컷에 달하는 자료와 지도 및 사진을 가미함으로써 글 못지않게 시각적인 효과를 높이고 있는 이 책은 단순히 정동과 덕수궁의 공간 복원뿐 아니라 애환이 담긴 우리의 역사적 공간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를 제공한다.
저자 김정동 교수는 근대 건축물 복원에 앞장선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 20일 옥관문화훈장을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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