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순택 논설위원 |
관습헌법이 도대체 뭔가. 오랜 시일에 걸쳐 확립된 헌법적 사항에 대한 관행일 것이다. 수도가 헌법적 사항인지도 의문이지만 대한민국 헌법이 성문법으로 엄연히 존재하고 있지 않은가. 관습헌법을 내세워 성문헌법의 개정 절차를 요구하는 것이 과연 법질서에 맞는가. 관습헌법을 인정한다 치자. 성문헌법에 규정된 정당한 절차를 밟아 국회를 통과한 법률이 성문헌법도 아닌 관습헌법에 의해 위헌이 되는 건 이상하지 않은가. 그러니 위헌이라는 결정을 이미 내려놓고 그 논리적 근거를 대려다 보니 관습헌법을 끌어온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드는 것이다. 법적인 사안을 정치적으로 풀었지 않나 하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문제는 이제부터다. 헌재의 다분히 정치적인 결정은 헌재의 자업자득으로 귀착될 가능성이 높다. 야당은 벌써부터 국보법 폐지, 사립학교법 개정안, 언론개혁법 등 4대 개혁법안이 통과되면 위헌 시비를 제기할 뜻을 공공연히 밝히고 있다. 설사 적법한 절차를 거쳤더라도 반대파에서 이를 인정하지 않고 위헌 시비를 걸면 논란 대상으로 전락하는 상황이 돼버렸다. 성균관도 호주법 폐지를 관습헌법을 빌어 막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헌재 만능주의'가 가져올 폐해는 헌재의 자업자득이라 하겠지만, 정부 시책의 번복으로 고스란히 국민의 몫으로 남게 된 손실은 어찌할 것인가.
헌재의 판결로 정부의 신수도권 발전 방안과 신 국토 구상은 막대한 차질을 빚게 됐다. 신행정수도의 밑 그림을 그리기 위해 실시중인 제4차 국토종합계획 수정작업 또한 궤도수정을 하거나 일시 중단이 불가피해졌다. 신행정수도와 혁신형 클러스터를 건설하여 수도권 일극 집중형의 현 국토구조를 파이(π)형 또는 다핵, 분산형, 글로벌형으로 바꾸겠다는 ‘신국토 구상'도 물건너갈 위기에 처했다. 지방은 다시 수도권이라는 거대한 블랙홀로 빨려들어갈 위기를 맞게 된 것이다. 헌재의 결정이 헌재(憲災)로 불리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정부 시책에 대한 신뢰도 추락과 리더십의 위기는 또 어찌할 것인가.
해답은 행정수도의 실질 내용을 유지하는데서 찾아야 한다. 행정도시론, 행정특별시론은 말 그대로 대안일 뿐이다. 어떤 대안보다도 개헌을 해서라도 행정수도 건설을 중단없이 추진하는 것이 바른 해결책이다. 국토균형발전을 반대하는 국민은 없다. 가장 확실한 대안인 행정수도 건설을 제쳐놓고 국토균형발전과 지방분권이 이룩될 수 없다. 국토균형발전이 여러차례 추진됐으면서도 실패로 끝났던 그동안의 역사가 증명한다. 특별법에 따라 천신만고 끝에 진행시켜 온 입지 선정과 추진위 설치 등 행정적 조치들은 무효화됐어도 국민과의 약속은 아직 무효화되지 않았다.
수도 이전을 정권의 명운을 건 절체절명의 국가정책으로 추진해왔다면 당당하게 정면돌파하는 게 옳다. 국민합의가 필요하다면 국민투표를 하고 헌법개정이 필요하면 헌법개정을 추진하면 될 것이다. 정 어렵다면 ‘대통령과 국회가 소재한 곳'이라는 결정문을 어기지 않으면서, 천도 수준의 수도 이전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헌법에 의해 부여된 행정부의 고유권한으로 본래의 목표를 흔들림 없이 추진하는 것만이 나라를 살리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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