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단상]국화향기가 교정에 가득하다

  • 오피니언
  • 독자 칼럼

[교육단상]국화향기가 교정에 가득하다

  • 승인 2004-10-27 00:00
  • 최진규 서산시 서령고 교사최진규 서산시 서령고 교사
학생회장 선거를 1주일 남짓 앞두고 우리반 응철이가 찾아왔다. 어렵사리 꺼낸 말은 학생회장 출마에 필요한 담임 추천서를 써 달라는 것 이었다. 평소 내성적인 성격으로 친구들 앞에서도 몹시 수줍음을 타던 녀석이 갑자기 학생회장에 출마하겠다고 나섰으니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더라도 오랜 시간 고민해서 결정했을 일이기에 담임 추천서를 써주기로 했다.

후보 마감 결과 여섯 명의 학생이 등록을 마쳤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후보자로 나선 다섯 명의 아이들에 비하면 응철이는 지명도도 떨어지고 당선 가능성도 낮아 행여 자신이 의도했던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마음에 상처라도 입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투표 3일을 앞두고 공식적인 선거운동이 시작됐다. 각자 지지하는 후보의 피켓을 든 학생들이 무리를 지어 일렬로 늘어선 채 구호를 외치고 있었지만 응철이를 지지하는 학생들의 모습은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교실로 올라가는 계단 옆의 게시판에는 어느새 후보자들의 포스터로 가득차 있었다. 평소 컴퓨터를 잘 다뤄 출전하는 대회마다 상을 휩쓸던 응철이의 포스터도 중간에 끼어 있었다. 평범해 보이는 포스터에는 최선을 다하겠으니 자신의 손을 잡아달라는 간절한 호소가 담겨있었다.

선거를 하루 앞두고 응철이를 불렀다. 준비를 잘 했느냐는 질문에 가벼운 미소를 지으며 선거 당일에 치러질 유세 대결에서 심판 받겠다는 말을 남긴 채 서둘러 교무실을 떠났다.

드디어 투표일이 다가왔다. 교내 체육관에는 여섯 명의 후보가 참석한 채 밤새워 준비했을 유세 대결이 펼쳐졌다. 마지막으로 연단에 오른 응철이도 평소보다는 높은 톤으로 자신의 생각을 후회없이 발표했다. 모든 후보들의 발표가 마무리되자 곧바로 투표에 들어갔다. 결과는 기숙사 학생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은 후보자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났다. 응철이는 여섯 명의 후보 가운데 최저 득표를 기록했다.

선거가 끝난 다음날, 복도에서 응철이를 만났다. 서운해도 빨리 잊으라는 격려에 선거 기간 내내 정해진 규칙을 지키며 최선을 다했기에 결코 후회하지 않는다며 이제부터는 학생회장에 당선된 친구가 무사히 임기를 마칠 수 있도록 앞장서서 도와줄 것이라는 말을 남긴 후, 남아있는 포스터를 마저 떼어내기 위해 다음 게시판으로 향했다.

비록 꼴찌에 그쳤으나 깨끗하게 승복하고 승자의 손을 들어주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선거철만 되면 당선되기 위해 온갖 불법을 저지르고 선거가 끝난 뒤에도 원수처럼 등을 돌리는 어른들의 볼썽사나운 선거문화가 떠올라 얼굴이 뜨거워졌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가을단풍 새 명소된 대전 장태산휴양림…인근 정신요양시설 응급실 '불안불안'
  2. [사설] 의료계 '정원 조정 방안', 검토할 만하다
  3. [사설] 충남공무원노조가 긍정 평가한 충남도의회
  4. 대전사랑메세나에서 카페소소한과 함께 발달장애인들에게 휘낭시에 선물
  5. 대전 유성 둔곡 A4블록 공공주택 연말 첫삽 뜨나
  1. 제90차 지역정책포럼 및 학술컨퍼런스 개최
  2. 국방과학일류도시 대전 위한 교류장 열려
  3. '한국탁구 국가대표 2024' 나만의 우표로 만나다
  4. 충남대병원 응급의학과 학술적 업적 수상 잇달아…이번엔 국제학자상
  5. 건양대병원, 시술과 수술을 한 곳에서 '새 수술센터 개소'

헤드라인 뉴스


아침밥 안 먹는 중·고생들… 대전 45% 달해 ‘전국 최다’

아침밥 안 먹는 중·고생들… 대전 45% 달해 ‘전국 최다’

대전지역 청소년들의 아침식사 결식률이 전국에서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적극적으로 대응해 학생들의 건강 증진이 절실한 상황이지만 대전교육청은 바른 식생활 교육을 축소한 것으로 나타나 대책 마련이 시급한 상황이다. 26일 교육부 2024 청소년건강행태조사 분석 결과에 따르면 전국적으로 학생들의 아침식사 결식률은 지난해보다 1.3%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해당 조사는 전국 800개 표본학교의 중·고등학생 약 6만 명을 대상으로 흡연, 음주, 식생활, 정신건강 등에 대해 자기기입식 온라인조사를 통해 진행됐다. 대전지역 학생들의 아침..

[기획] 대전, 트램부터 신교통수단까지… 도시균형발전 초석
[기획] 대전, 트램부터 신교통수단까지… 도시균형발전 초석

대전시가 충청권 메가시티 완성의 시작점인 광역교통망 구축에 힘을 쏟기 위해 총력을 다하고 있다. 도시철도 2호선 트램부터 신교통수단 시범사업 등을 추진하면서 도시균형발전 초석을 다지는 것을 넘어 충청 광역 교통망의 거점 도시가 되기 위한 준비에 나섰다. 28년 만에 도시철도 2호선 트램이 올해 연말 착공한다. 도시철도 2호선은 과거 1995년 계획을 시작으로 96년 건설교통부 기본계획 승인을 받으면서 추진 됐다. 이후 2012년 예비타당성 조사를 통과하면서 사업이 물꼬를 틀 것으로 기대됐지만 자기부상열차에서 트램으로 계획이 변경되면..

대전 유통업계, 크리스마스 대목 잡아라... 트리와 대대적 마케팅으로 분주
대전 유통업계, 크리스마스 대목 잡아라... 트리와 대대적 마케팅으로 분주

대전 유통업계가 다가오는 크리스마스를 겨냥한 크리스마스트리와 대대적인 마케팅으로 겨울철 대목을 노리고 있다. 우선 대전신세계 Art&Science는 본격적인 크리스마스 시즌을 앞두고 26일 백화점 1층 중앙보이드에서 크리스마스트리를 선보였다. 크리스마스 연출은 '조이 에브리웨어(Joy Everywhere)'를 테마로 조성했으며, 크리스마스트리 외에도 건물 외관 역시 크리스마스 조명과 미디어 파사드를 준비해 백화점을 찾은 고객이 크리스마스의 즐거움을 찾을 수 있도록 했다. 대전 신세계는 12월 24일까지 매일 선물이 쏟아지는 '어드벤..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12월부터 5인승 이상 자동차 소화기 설치 의무화 12월부터 5인승 이상 자동차 소화기 설치 의무화

  • 첫 눈 맞으며 출근 첫 눈 맞으며 출근

  • 가을의 끝자락 ‘낙엽쌓인 도심’ 가을의 끝자락 ‘낙엽쌓인 도심’

  • ‘우크라이나에 군사지원·전쟁개입 하지 말라’ ‘우크라이나에 군사지원·전쟁개입 하지 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