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사태로 인해 엄청난 피해를 본 충청권에 대해 정부와 정치권에서는 과연 어떠한 생각을 하고 있는가? 그러나 현시점은 행정수도 이전 무산에 따른 각종 대안들을 염출해 내는데 부심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이를 지켜보고 있는 충청권의 입장에서는 참으로 납득하기 어렵다.
청와대와 입법부가 옮겨지는 것이 결과적으로 천도이므로, 천도는 관습헌법 논리에 따라 안된다는 것이 헌재의 위헌판결 요지라 한다면, 이를 제외하고 나머지는 당초계획대로 가면 될 것이라는 주장은 물론, 헌재의 의견과 관련하여 시간이 걸리더라도 국민투표 절차를 거쳐 당초 원안대로 가야 하는 것이 옳다는 주장도 꽤나 설득력을 갖는다.
필자는 이번 사태를 접하면서 국가(정부)에 대한 신뢰기반이 허물어졌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비단 행정수도의 충청권 이전 그 자체가 엄청난 중대성을 갖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동안 보여준 정부와 정치권의 태도에 비추어 그 귀결은 국가(정부) 신뢰를 확증시켜 주었어야 했다. 그러나 전혀 그렇지 못했다. 그렇다면 문제는, 이렇게 허물어진 정부와 정치권에 대한 신뢰를 어떻게 회복할 수 있겠는가? 아니 신뢰할 수 없는(신뢰받을 수 없는) 정부나 정치권이라면 정말로 큰 문제가 아닌가?
차제에 계룡시 승격을 잠시 떠올려 보지 않을 수 없다. 언필칭 계룡시 승격은 이 지역에서 스스로 만들어 성사시킨 하나의 사례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행정수도 이전은 이 지역에 정부나 정치권에서 만들어 주겠다고 한 것이다. 따라서 이들은 성격 자체가 분명 다르다. 그러나 이들에게는 엄연히 공통점이 있다. 즉, 국가적 약속에 대한 공적 신뢰라는 것이다. 계룡시가 승격된 중요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으나, 그 중에는 역대 대통령들의 시승격 추진 약속이라는 부분이 극히 중요한 요체가 되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이번 헌재의 위헌결정과 관련하여, 추락하고만 정부나 정치권에 대한 신뢰기반은 어찌 되는가? 신뢰할 수 없는 정부, 신뢰받을 수 없는 정치권은 그 존립기반에 치명적인 손상이 불가피한 것은 이미 역사적으로도 나타난 것 아닌가? 또 하나, 만일 충청권이 이토록 정치적 기반(정치력)이 허약하지 않았다면, 과연 이렇게 되었을까?
필자는 언젠가 이 곳 칼럼 란에서 신행정수도 건설은 대선공약 때 정치적 과정에서 나온 것으로서, 그 생명력 내지는 실효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이에 상응하는 정부와 정치권의 책무를 주문했던 기억이 난다. 이를 허술하게 처리했기에, 그리고 정략적으로 임했기 때문에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은 불문가지다.
이제 충청권에서는 정부나 정치권에 대한 신뢰 문제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알게 해 줄 필요가 너무나 크다. 이 지역의 정서가 어떻고, 기질이 어떠하니 그대로 유야무야 넘어갈 사안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정부나 정치권에 전달할 필요가 있다.
차제에 충청권의 책임 있는 사회지도층 인사들은 이번 사태에 대해 공분(公憤)할 필요가 있으며, 특히 정치인들은 당적에 관계없이 동일한 목소리를 내야만 한다. 그리하여 국가발전과 지역발전이 동시적인 것임을 분명 재확인하면서, 이를 정부나 정치권에 강하게 요구해야 한다. 그래야만 정부나 정치권에서도 무너진 공적 신뢰를 회복하는 방향에서만 이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
행여 정부나 정치권에서 충청권을 달래기식 위무(慰撫)에 그친다면, 이는 본말을 전도한 것이며, 만일 그렇게 된다면 정부나 정치권에 대한 신뢰기반은 더 이상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즉 정부나 정치권에서는 충청권 전체가 납득할 수 있는 조치를 명확하게 내놓아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실추된 공적 신뢰기반을 능히 만회할 수 있는 정도의 결자해지의 조치여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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