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에세이]웃고 있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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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에세이]웃고 있는 사람들

  • 승인 2004-10-26 00:00
  • 김세영 前 목요언론인클럽회장김세영 前 목요언론인클럽회장
민주주의가 국민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제도라면 국민은 나름대로 정치적 상황의 옳고 그름을 판단 할 수 있는 기준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가면 갈수록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가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내 뜻을 대신해서 정치를 해 주는 사람을 뽑을 때 많이 헷갈리는 것이 사실입니다. 노태우 정권 때는 보통사람을 기준으로 정치를 한다고 했던 기억이 납니다. 요즘 국민의 대다수인 보통 사람들은 정말 헷갈리는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우선 신문이나 TV를 보아도 그렇습니다. 비리 사건에 연루되어 조사 기관에 연행되어 가는 사람들은 사진 기자들이 대기하고 있는 포토라인에서 거의가 웃고 있습니다. 심지어 형을 선고받고 구치소로 가는 사람들도 역시 웃고 있습니다. 웃고 있는 이들의 대부분은 돈과 관련되어 있으며 그 액수는 거의가 천문학적입니다.

사람의 정상적인 표정이라면 죄 지은 사람은 얼굴을 들지 못 하고 가리는 법이며, 진실로 억울한 사람은 비분강개하는 표정을 지어야 합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같은 신문이나 방송에 나오는 절도범이나 파렴치범들은 하나같이 얼굴을 가리고 나옵니다. 자신의 낯을 공개하기에는 너무 부끄럽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피의 사실을 공표하지 않으려는 경찰의 배려 때문일까요. 아무튼 그러다 보니 보통 사람들은 헷갈릴 수밖에요.

사람들의 웃음을 신뢰하기 어렵게 되다 보니 신문 동정 난에 매일 얼굴이 나오는 자치단체장이나 기관장들의 얼굴들이 헷갈려 보입니다. 거의가 웃고 있기 때문입니다. 기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찡그리는 얼굴보다 웃는 얼굴이 더 좋지요. 하지만 웃음의 의미가 왜곡되어 혼란을 주고 있다면 차라리 정색을 하고 찍은 사진이 더 신뢰감이 날수도 있습니다. 신문 동정 난에 매일같이 저렇게 웃고 있는 사람들도 “어느 땐가는 포토라인에 서서 또 웃을까?” 하는 엉뚱한 생각을 떠올리게 합니다.

요즘 사람들은 여권사진이나 주민등록증 사진에 웃고 있는 표정의 사진을 첨부하는 사람들이 늘어난다고 합니다. 경직된 표정보다는 부드럽게 웃고 있는 사진이 자신을 소개하는데 도움이 되겠지요. 하지만 웃고 있는 사진이 경찰 수사용으로는 부적합하다 하여 가능하면 ‘보통 표정'의 사진을 요구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좋은 사회 살기 좋은 사회엔 웃음이 넘쳐납니다. 선진국의 TV나 라디오 방송에서는 웃음이 만발하는 프로그램이 대부분입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우리의 웃음은 본래의 웃음이 아닌 ‘비웃음’쪽으로 뜻이 왜곡되어 가는 느낌이 듭니다. 포토라인에 서 있는 사람들은 정말 왜 웃고 있을까요. 그들의 진실은 무엇일까요. “왜 나만 잡아넣느냐? 나보다 더 많이 먹은 사람들도 많은데….” 혹시 이런 항변이 그 사람들의 웃음 뒤에 숨어 있는 것은 아닐까요? 보통 사람들은 정말 혼란스럽습니다.

이제 사람들은 자신의 표정 관리에 대해 신경을 써야 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신문 방송에서 늘 웃고 있던 사람이 어느날 갑자기 같은 웃는 표정으로 포토라인에 서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짜리 외손자놈에게 카메라를 들이대면 으레 두 손가락으로 V자를 그리며 웃는 표정을 짓습니다. 그것도 아주 익숙한 표정으로. 갓 날 때부터 카메라 앞에 익숙했기 때문입니다. 비웃음의 뜻도 모르는 순수한 웃음이 그 아이 사진에서 배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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