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창기 대표 |
형평의 여신은 행정수도이전을 바라는 사람들의 간절한 기도에 고개를 돌려 버렸다. 국가가 존재하는 이유는 형평을 실현하기 위함에 있다. 그리고 헌법재판소는 형평을 저울질하는 국가의 최고기관이다. 특히 우리사회에서 소외받고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는 사람들을 위해 존재하는 국가기관이다. 따라서 특혜를 누려온 서울과 상대적으로 박탈감을 느껴온 지방간의 이익 다툼에서 마땅히 헌재는 약자의 편을 들어야 했다.
그런데 행정수도이전에 대한 헌재의 평결을 보면서 여전히 우리 사회에 정의가 살아있다고 믿기 어렵고, 믿고 기댈만한 정부기관이 없다는 사실에 좌절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물론 그 반대의 입장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대한민국 국민의 승리라고 외쳐 대지만 그동안 서울의 발전을 위해 묵묵히 희생해온 지방사람들에게는 심오한 배신감을 안겨 주고 말았다. 사실 행정수도이전문제를 헌법소원의 대상으로 여겼던 자체가 무리였다. 행정수도이전은 정부정책의 하나에 불과하다.
정부는 국가균형발전을 추구할 독점적 권한을 갖고 있다. 그 권한으로 지난 40년간 성장잠재력이 뛰어난 수도권에 제한된 자원을 집중 투자해왔다. 그 결과 대한민국은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루었고, 세계 12위의 경제대국으로 발돋움했다. 그러나 밝은 이면에는 반드시 그늘이 있게 마련이듯 국가경제의 성장 못지 않게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심대한 격차가 국민사이에 분열을 가져오고, 국가의 경쟁력을 저해해 온 것도 사실이다. 이때 국가의 균형발전을 도모하기 위한 정부의 정책선택은 여러 갈래가 있을 수 있다.
주지하다시피 그중의 하나가 신행정수도의 충청권 이전이다. 수도권 유인이 정치행정권력이므로 이를 지방으로 분산시킨다면 서울로의 집중을 어느 정도 저지할 수 있다. 그동안 정부의 잘못된 정책선택으로 지방은 죽을 지경에 처해 있으니 결자해지의 차원에서 정부 스스로 옮겨 가겠다는 것이다.
이만큼 책임감 있고 확실한 균형발전 정책이 더 이상 없는 게 분명하다. 그런데 수도권, 특히 서울의 일부 기득권층들이 자신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저항을 하는 것은 오로지 나 밖에 모르는 지역이기주의에 다름이 아니었다. 더구나 국가보안법폐지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행정수도이전을 더불어 반대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들은 반대를 위한 반대에 집착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던 것이다. 국가의 안위가 그렇게 위태롭다면 북한의 공격권에서 행정수도 만이라도 벗어나게 해야 진정한 대한민국의 국민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헌재는 가진 자들의 손을 들어 주었다. 이제 정부가 수행하는 모든 정책은 헌재의 결재를 받거나 국민투표에 부칠 일이다. 헌재는 참으로 지혜롭지 못한 판결로 스스로의 위상을 추락시켰으며, 국가정책의 혼란 및 충청권 주민의 정치적 공황 내지는 경제적 손실을 끼쳤으니 그 책임을 어떻게 감당할지 자못 궁금하다. 이제 지방사람들도 그동안 희생해온 댓가를 요구하기 위해 헌법소원을 제기하고, 앞으로는 수도권에 공급되는 지방의 물과 전기도 제값 받기 운동을 전개할지도 모른다. 이처럼 수도권과 지방이 각자의 이익만을 고집한다면 이 나라의 앞날이 어떻게 될 것인가는 너무 자명한 것이다.
어쨌든 이번 헌법소원을 야기한 일부 책임이 행정수도이전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보여 준 정부의 불성실에도 있는 만큼 앞으로는 행정수도이전이 가져올 수도권의 비전과 다른 지방에 미치는 긍정적 효과를 널리 알리고 설득하려는 능동적인 자세를 요구하고 싶다.
지금 우리나라는 크게 흔들리고 있다. 그리고 대다수의 국민들이 희망이 없다고 느끼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헌재의 결정이 국가의 분위기를 쇄신하기는 커녕 더욱 어려운 상황을 연출하고 말았으니 그들의 정치적 감각도 마비되어 있는게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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