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영돈 편집부장 |
“신뢰할 수 없이 부풀린 내신 성적과 변별력 없는 수능 등급제로 어떻게 우수한 인재를 뽑을 수 있습니까. 대학에 최소한의 학생 선발권을 보장해 줘야 되는 것 아닌가요.”
최근 우리 사회는 그동안 소문으로 떠돌았던 일부 대학의 ‘고교등급제’ 적용이 사실로 밝혀지며 오는 2008학년도 새 대학입시 개선안을 둘러싸고 교육계 갈등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고 있다. 교직원 단체인 전교조는 일부 대학의 은밀한 고교등급제 시행은 결코 용인될 수 없는 반교육적 행태라며 맹공을 퍼부었고, 이에 질세라 대학에서는 고교에서 보내온 뻥튀기된 내신 성적 실태를 적나라하게 공개하며 반격에 나섰다.
또한 서울대와 지방 국립대, 교총 등 그동안 논쟁에서 한발 비켜 있던 여타 교육주체 마저도 대학 자율권과 공교육 붕괴 등 제각각 목소리를 높이며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실정이다. 당초 전교조와 일부 대학간의 논쟁에서 비롯된 대입제도 공방이 이젠 전교조와 교총의 교원단체간, 서울대와 지방 국립대의 대학간 갈등으로 비화됐다. 또 그 논쟁 범위 역시 고교등급제에서 본고사 부활 등으로 번지고 있다. 마치 연합 전선의 교육 대전(大戰)을 보는 듯하다.
이에 안병영 교육부총리는 지난 14일‘국민에게 드리는 말씀’을 통해 각계의 소모적인 논쟁은 접고 서로 지혜를 모아 난제를 풀자고 설득했으나, 당사자들은 근본적인 대책 없는 원칙적 차원의 담화라며 시큰둥한 반응이다.
교육정책은 그 나라의 백년대계(百年大計)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선 언제나 개혁의 대상인 ‘뜨거운 감자’였다. 해방이후 17번이나 바뀐 입시 제도가 그 좋은 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그리고 교육부 수장이 바뀔 때마다 그럴듯하게 포장된 무지갯빛 입시제도들을 공표하고 시행했기 때문이다. 명분이야 언제나 그랬듯이 ‘학교교육의 정상화’다.
그러나 이같이 잦은 개편의 피해자는 바로 우리 아들 딸들이다. 당장 2008학년도 대입시 개편안의 대상인 현재 중학교 3학년 학생과 학부모들은 얼마남지 않은 올 고입시에서 어느 고교를 선택해야 할지 갈피를 못 잡겠다고 아우성이다. 이래가지고 어떻게 학교 교육이 정상화 될 수 있단 말인가. 교육의 근본은 명문대학 진학이 아니다.
어린 학생들의 상상력과 창의력 그리고 잠재력과 같은 미래 지향적 역량을 높여 앞으로 우리 사회를 이끌 동량으로 키우는 데 있다. 입시제도 또한 이점에 무게 중심을 두고 바뀌어야 한다. 개개인의 개성이나 적성은 무시한 채 오로지 점수 따기식, 자율보다는 규제 일변도의 천편일률적인 교육의 싹은 이번 개편안에서 과감히 잘라내야 할 것이다.
노벨물리학상 수상자인 한국과학기술원(KAIST) 로버트 러플린 총장의 말이 생각난다. “난 고교 시절 성적이 반에서 30등도 안됐다. 그런데 UC버클리 대학이 나를 뽑아 주었다. 한국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일 것이다. 그러나 그 덕분에‘오늘의 나’가 있을 수 있게 됐다.”
오는 26일이면 그동안 실타래처럼 얽혀 있던 2008학년도 대입제도 개선 최종안이 발표된다. 더불어 다음달 말엔 초중등 및 대학 교육 전반에 걸친 중장기 교육 청사진이 공개된다. 간절히 바라건대 이번 만큼은 땜질식 응급처방이 아닌, 진정 21세기를 이끌 우리 후세들을 위한 큰 틀이 나와야 한다. 그 길이 바로 국가 백년대계를 세우는 초석이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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