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칼럼]가을 산사의 향기

  • 오피니언
  • 독자 칼럼

[종교칼럼]가을 산사의 향기

  • 승인 2004-10-16 00:00
  • 장곡 계룡산 갑사 주지장곡 계룡산 갑사 주지
올 가을 계룡산에도 어김없이 단풍이 붉게 물들었다. 예부터 갑사는 가을 풍경이 아름답기로 명성이 난 곳이다. 단풍이 물든 갑사 가는 길에는 오리숲을 지나면 주렁주렁 열린 붉은 감들이 산을 찾은 객들에게 깊어 가는 가을의 정취를 감상하도록 해준다.

일상의 짐을 훌훌 벗어 던지고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가을, 산사를 찾아 맑고 시원한 향기를 맡는 것도 괜찮을 듯 싶다.

계룡산도 자연의 섭리대로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옷을 입는다. 봄은 봄대로 화창한 꽃이 피어 좋고, 여름은 녹음이 우거져 좋고, 가을은 단풍이 있어 좋으며, 겨울은 눈꽃이 피어 좋다.

1년 내내 산에서 사는 산승은 이래저래 자연에 취하다보니, 계곡 아래 세속 사람들의 소식이 어두울 때가 가끔 있다. 종종 사업에 실패하거나 골치 아픈 일로 산사를 찾아오는 사람들을 만난다. 세상사는 게 어디 하나 쉬운 일이 있겠는가마는 사정을 듣다보면 딱한 일도 참 많다.

산사의 감나무는 많은 열매를 맺다보니까, 나무 무게가 열매를 지탱 못해 고개를 떨구듯이 사람들도 삶의 무게가 무거울 땐 고개를 떨구기 마련이다. 그때마다 인간세상 일들이 새옹지마(塞翁之馬)라고 위로해보지만 당사자의 쓰라린 심정은 이루 헤아리기 어렵다.

산에는 모진 풍상을 견뎌내며 자기 자리를 지켜내고 있는 이름 모를 그루터기들이 곳곳에 서있다. 낮에는 나무 사이로 산새가 지저귀고 산짐승들의 움직임이 활발해지다가도 날이 저물면 적막 속으로 사라진다.

원색으로 물든 단풍과 고즈넉한 가을 산사의 오색 단청 아래 흐르는 향내음과 목탁소리, 풍경소리는 세속에서 분쟁과 다툼으로 얼룩진 영혼들에게 지나친 욕심을 버리라고 조용히 암시하는 듯 하다.

갑사에서는 이 가을에 ‘추(秋) 갑사 가는 길’이라는 제목으로 오는 23, 24일 이틀 간 산사음악회, 시화전시회, 나눔의 장터 등 축제의 장을 마련했다. 또한 임진왜란시 나라를 구하려다가 순국한 영규대사와 800여 의승군의 412주년을 맞아 스님의 넋을 기리는 ‘영규대제’도 거행한다.

단풍철에 산사에서 지친 심신을 위로하고 자신을 한번쯤 돌아보는 것도 마음을 먹고 실행에 옮기지 않으면 무심하게 지나가 버릴 수 있다. 세속의 짐을 털어버리고 가을 산사에 오면 대자연과 사찰의 분위기가 반겨줄 것이다. 외롭거나 괴로울 때는 스님을 찾아 차 한잔 마시면서 속내를 털어보는 것도 좋으리라.

이 가을엔 문득 고려시대 나옹선사의 ‘토굴가’가 생각난다. ‘청산을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창공은 나를 보고 티없이 살라하네/탐욕도 벗어놓고 성냄도 벗어놓고/물같이 바람같이살다가 가라하네’

올 가을은 예년보다 짧고 일찍 추위가 찾아온다고 한다. 짧은 가을 속의 허허로움을 찾아 가을의 향기를 느껴보는 여행 중에 산사를 찾는 것도 삶의 활력소가 될 수 있으리라.

“사는 것이 너무 힘들 때는 산에 오세요. 불행하다고 생각할 때도 산에 오세요. 산에는 단풍 한 잎, 계곡 물소리 하나에도 행복의 향기가 배어 있습니다.” 가을 산사에 오면 오랜만에 소박한 자신의 참 모습을 찾을 수 있는 기회가 있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가을단풍 새 명소된 대전 장태산휴양림…인근 정신요양시설 응급실 '불안불안'
  2. [사설] 의료계 '정원 조정 방안', 검토할 만하다
  3. [사설] 충남공무원노조가 긍정 평가한 충남도의회
  4. 대전사랑메세나에서 카페소소한과 함께 발달장애인들에게 휘낭시에 선물
  5. 제90차 지역정책포럼 및 학술컨퍼런스 개최
  1. 대전 유성 둔곡 A4블록 공공주택 연말 첫삽 뜨나
  2. '한국탁구 국가대표 2024' 나만의 우표로 만나다
  3. 국방과학일류도시 대전 위한 교류장 열려
  4. 충남대병원 응급의학과 학술적 업적 수상 잇달아…이번엔 국제학자상
  5. 건양대병원, 시술과 수술을 한 곳에서 '새 수술센터 개소'

헤드라인 뉴스


아침밥 안 먹는 중·고생들… 대전 45% 달해 ‘전국 최다’

아침밥 안 먹는 중·고생들… 대전 45% 달해 ‘전국 최다’

대전지역 청소년들의 아침식사 결식률이 전국에서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적극적으로 대응해 학생들의 건강 증진이 절실한 상황이지만 대전교육청은 바른 식생활 교육을 축소한 것으로 나타나 대책 마련이 시급한 상황이다. 26일 교육부 2024 청소년건강행태조사 분석 결과에 따르면 전국적으로 학생들의 아침식사 결식률은 지난해보다 1.3%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해당 조사는 전국 800개 표본학교의 중·고등학생 약 6만 명을 대상으로 흡연, 음주, 식생활, 정신건강 등에 대해 자기기입식 온라인조사를 통해 진행됐다. 대전지역 학생들의 아침..

[기획] 대전, 트램부터 신교통수단까지… 도시균형발전 초석
[기획] 대전, 트램부터 신교통수단까지… 도시균형발전 초석

대전시가 충청권 메가시티 완성의 시작점인 광역교통망 구축에 힘을 쏟기 위해 총력을 다하고 있다. 도시철도 2호선 트램부터 신교통수단 시범사업 등을 추진하면서 도시균형발전 초석을 다지는 것을 넘어 충청 광역 교통망의 거점 도시가 되기 위한 준비에 나섰다. 28년 만에 도시철도 2호선 트램이 올해 연말 착공한다. 도시철도 2호선은 과거 1995년 계획을 시작으로 96년 건설교통부 기본계획 승인을 받으면서 추진 됐다. 이후 2012년 예비타당성 조사를 통과하면서 사업이 물꼬를 틀 것으로 기대됐지만 자기부상열차에서 트램으로 계획이 변경되면..

대전 유통업계, 크리스마스 대목 잡아라... 트리와 대대적 마케팅으로 분주
대전 유통업계, 크리스마스 대목 잡아라... 트리와 대대적 마케팅으로 분주

대전 유통업계가 다가오는 크리스마스를 겨냥한 크리스마스트리와 대대적인 마케팅으로 겨울철 대목을 노리고 있다. 우선 대전신세계 Art&Science는 본격적인 크리스마스 시즌을 앞두고 26일 백화점 1층 중앙보이드에서 크리스마스트리를 선보였다. 크리스마스 연출은 '조이 에브리웨어(Joy Everywhere)'를 테마로 조성했으며, 크리스마스트리 외에도 건물 외관 역시 크리스마스 조명과 미디어 파사드를 준비해 백화점을 찾은 고객이 크리스마스의 즐거움을 찾을 수 있도록 했다. 대전 신세계는 12월 24일까지 매일 선물이 쏟아지는 '어드벤..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12월부터 5인승 이상 자동차 소화기 설치 의무화 12월부터 5인승 이상 자동차 소화기 설치 의무화

  • 첫 눈 맞으며 출근 첫 눈 맞으며 출근

  • 가을의 끝자락 ‘낙엽쌓인 도심’ 가을의 끝자락 ‘낙엽쌓인 도심’

  • ‘우크라이나에 군사지원·전쟁개입 하지 말라’ ‘우크라이나에 군사지원·전쟁개입 하지 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