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짐을 훌훌 벗어 던지고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가을, 산사를 찾아 맑고 시원한 향기를 맡는 것도 괜찮을 듯 싶다.
계룡산도 자연의 섭리대로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옷을 입는다. 봄은 봄대로 화창한 꽃이 피어 좋고, 여름은 녹음이 우거져 좋고, 가을은 단풍이 있어 좋으며, 겨울은 눈꽃이 피어 좋다.
1년 내내 산에서 사는 산승은 이래저래 자연에 취하다보니, 계곡 아래 세속 사람들의 소식이 어두울 때가 가끔 있다. 종종 사업에 실패하거나 골치 아픈 일로 산사를 찾아오는 사람들을 만난다. 세상사는 게 어디 하나 쉬운 일이 있겠는가마는 사정을 듣다보면 딱한 일도 참 많다.
산사의 감나무는 많은 열매를 맺다보니까, 나무 무게가 열매를 지탱 못해 고개를 떨구듯이 사람들도 삶의 무게가 무거울 땐 고개를 떨구기 마련이다. 그때마다 인간세상 일들이 새옹지마(塞翁之馬)라고 위로해보지만 당사자의 쓰라린 심정은 이루 헤아리기 어렵다.
산에는 모진 풍상을 견뎌내며 자기 자리를 지켜내고 있는 이름 모를 그루터기들이 곳곳에 서있다. 낮에는 나무 사이로 산새가 지저귀고 산짐승들의 움직임이 활발해지다가도 날이 저물면 적막 속으로 사라진다.
원색으로 물든 단풍과 고즈넉한 가을 산사의 오색 단청 아래 흐르는 향내음과 목탁소리, 풍경소리는 세속에서 분쟁과 다툼으로 얼룩진 영혼들에게 지나친 욕심을 버리라고 조용히 암시하는 듯 하다.
갑사에서는 이 가을에 ‘추(秋) 갑사 가는 길’이라는 제목으로 오는 23, 24일 이틀 간 산사음악회, 시화전시회, 나눔의 장터 등 축제의 장을 마련했다. 또한 임진왜란시 나라를 구하려다가 순국한 영규대사와 800여 의승군의 412주년을 맞아 스님의 넋을 기리는 ‘영규대제’도 거행한다.
단풍철에 산사에서 지친 심신을 위로하고 자신을 한번쯤 돌아보는 것도 마음을 먹고 실행에 옮기지 않으면 무심하게 지나가 버릴 수 있다. 세속의 짐을 털어버리고 가을 산사에 오면 대자연과 사찰의 분위기가 반겨줄 것이다. 외롭거나 괴로울 때는 스님을 찾아 차 한잔 마시면서 속내를 털어보는 것도 좋으리라.
이 가을엔 문득 고려시대 나옹선사의 ‘토굴가’가 생각난다. ‘청산을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창공은 나를 보고 티없이 살라하네/탐욕도 벗어놓고 성냄도 벗어놓고/물같이 바람같이살다가 가라하네’
올 가을은 예년보다 짧고 일찍 추위가 찾아온다고 한다. 짧은 가을 속의 허허로움을 찾아 가을의 향기를 느껴보는 여행 중에 산사를 찾는 것도 삶의 활력소가 될 수 있으리라.
“사는 것이 너무 힘들 때는 산에 오세요. 불행하다고 생각할 때도 산에 오세요. 산에는 단풍 한 잎, 계곡 물소리 하나에도 행복의 향기가 배어 있습니다.” 가을 산사에 오면 오랜만에 소박한 자신의 참 모습을 찾을 수 있는 기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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