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도춘추]현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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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도춘추]현장에서

  • 승인 2004-10-15 00:00
  • 임철중 대전문화예술의전당 후원회장임철중 대전문화예술의전당 후원회장
1988년에 소니가 갓 출시한 36인치 HD를 용케 구했다. BS 안테나로 보는 NHK 시험방송화면은 관중석 얼굴을 알아볼 정도로 선명했는데, 회사에서는 이를 “임장감(臨場感)넘치는 화면” 으로 선전하였다. 우리말로 하면 ‘현장감’이다.

음향 또는 비디오 기기의 발달사(史)는 소리나 모습을 얼마나 ‘현장 그대로!’ 재현하느냐 하는 연구와 노력의 역사다. 최초의 오디오는 단순재생에만 급급한 축음기에 불과 하였으나(1877), 점차 하이파이, 스테레오로 발전하다가, 드디어 CD가 출현한다. 마찰음이 바늘과 함께 사라지고 음질도 기막히게 향상된다.
그러나 편리함과 깨끗함이 빼앗아 간 것도 있다. 디지털화를 위해서는 극히 짧긴하지만 일정한 시

간대로 쪼갠 음(音)의 평균치만을 기록해야한다. 비록 인간의 귀로 감별할 수는 없을지라도 어쩐지 냉정하게(?) 들린다. 나아가 MP3는 압축저장을 위하여 인간의 귀에 들리지 않는 음역을 잘라내 버린 거두절미(去頭截尾)의 다이제스트다. 항용 문명의 발전이 그러하듯, 발전에 발전을 거듭한 결과 본래의 목표였던 ‘현장 그대로!’ 로부터 오히려 멀어져간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물론 HD의 현장감은 훌륭하지만, 시각(視覺)이 감성(感性)을 잃고 정보의 창구기능만하는 대부분의 현대인에게 비디오의 발전은 또 다른 이야기가 될 것이다.

1977년 54세를 일기로 타계한 마리아 칼라스는 콜로라투라 창법을 재현시킨 불세출의 프리마돈나였다. 불행히도 음질이 뛰어난 음반을 남기지 못한 것은 그녀의 녹음 기피증 때문이었다고 한다. 보컬 보다는 연기력을 높이 평가한다는 짓궂은 비평도 있었지만, 음악 특히 오페라는 ‘현장에서’ 들어야한다는 그녀의 주장에 동의한다. 명품의 음향기기로 음악을 듣는 것은 무엇에도 비할 수 없는 즐거움이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현장을 늘 접할 수 없기에 선택하는 ‘제 2지망’일 것이다.

현장을 고스란히 재현하는 데에는 오디오기기의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며칠 후 18일에는 대전문화예술의전당 아트홀에서 뉴욕필하모닉의 초청공연이열린다. 마에스트로 로린마젤의 지휘로 귀에 익은 곡들을 연주한다. 세계 삼대교향악단의 연주를 ‘대전’에서 듣는다는 것 자체가 꿈같은 일이다. 현장에서 교감을 느끼며 잔기침소리까지 오감(五感)을 통하여 담아올 그날의 공연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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