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칼럼]고해소에서 무슨 일이 생겼나

  • 오피니언
  • 독자 칼럼

[논설위원칼럼]고해소에서 무슨 일이 생겼나

  • 승인 2004-10-13 00:00
  • 최충식 논설위원최충식 논설위원
▲  최충식 논설위원
▲ 최충식 논설위원
프랑스의 정신분석학자 세르주 티스롱은 사람들이 사물과 직접적으로 맺고 있는 감각적 관계에 초점을 맞춘다. 휴대폰을 곰 인형에 비유하거나 현금지급기를 고해성사실로 본 것도 신체와 이미지에 기반한 그의 색다른 해석이었다. 두 곳에서 행해지는 의식이나 행동에 차이가 없다.

그렇다. 현금지급기 부스와 신에게 자신의 신용도를 불안스레 묻는 고해소(告解所)의 풍경은 피장파장이다. 지난 이틀 간의 국정감사 자료대로라면 통계에 잡히지 않는 사실상의 신용불량자를 포함해서 480만명으로 늘려 잡을 수 있는 부류는 아예 그 앞에 설 자격마저 박탈당한다.

이 경우, 백화점 카드나 통신료 연체까지 합산하긴 했어도 경제활동인구 5명 중 1명이 고해소 근처에 얼씬거릴 수조차 없다면, 그 주범이 신용카드라면, 신용 없는 신용카드를 경기부양의 이름으로 포장한 현실을 티스롱이 다시 해석하면 어떡할까. 그 대열에 끼지는 않았지만 카드 여러 개로 열심히 돌려 막기를 거듭하는, 시지프스 신화처럼 피곤한 삶에는 또 뭐라고 토를 달까.

그러다 아차 싶은 순간에 돌덩이 같은 빚 덩어리를 감당 못하면 고해소에서 내쫓기는 신세가 된다. 은행의 VIP고객들이었던 집창촌 업주들도 마이너스대출과 현금서비스를 이용할 정도로 자금사정이 나빠졌다. 성매매 특별법 시행 이후의 변화다. 카드업계는 비상이다. 성매매 인구를 100만명으로 잡고 이들 상당수가 신용불량자로 전락하지 않을지 우려하는 희한한 현상도 벌어지고 있다.

이런 모든 상황을 누구든 적당히 고백하고 대충 사면받는다고 생각해서 일부러 꾸미지는 않았을 것이다. 감사원장 말을 따면 카드대란은 “분수 모른 국민” 탓이기도 하다. 드물게는 사은품 전동 칫솔의 유혹으로 길거리에서 만든 카드가 나락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미성년자와 죽은 사람에게도 카드가 발급될 정도라니 옛적 조선시대의 삼정문란도 아니고 뭔지 모르겠다.

도식으로 정리하면 DJ가 YS로부터 외환위기를 상속받았고 현 정부는 DJ로부터 신용카드 위기를 상속받았다. 그 과정에서 시장원리를 무시하고 카드사를 전당포처럼 만든 데 대해 시장이 복수를 한 것이다. 카드 대란의 다른 줄기는 바로 국감을 나란히 치른 재경부와 금감위, 금감원의 감독 시스템의 복잡성에도 있다. 관(官)은 치(治)를 위해 존재한다는 말이 무색해진다.

상대적이지만 그나마 글로벌 관점의 경제 전반은 외환위기 때에 비해 꽤 양호하다(pretty good). 어딘가에 돈도 굴러다닌다. 문제는 치솟는 유가와 장마철에 식수난 겪는다 하듯 텅 비어버린 소비 계층의 호주머니다. 만일 100조원을 헤아리는 신용불량자 대출금이 금융기관의 부실채권으로 이어지면 제2, 제3의 위기상황을 막을 재간이 없을 것이다.

걱정은 걱정에 그치도록 하고, 호미로 못 막으면 가래로라도 막아야 한다. 잘못된 부양책은 더 큰 수렁을 만든다. 소비가 견인하는 경제가 선진경제라고 떵떵거리며 세금공제에 복권까지 걸어 신용카드 붐을 일으키려던 그 시절이 반면교사다. 신용불량자에, 숨어 있는 신용불량자가 부채 부담을 키우고 청년실업과 파트타임 직종은 늘어만 간다. 딱히 이 시점에서 좌편향·우편향인지를 가리는 것은 무의미하다. 인권도 소중하고 이념도 좋지만 성장 동력을 키워 잘살게 하는 일도 진보의 목표여야 한다.

결론도 세르주 티스롱 식이다. 고해소 안에서는 모두 죄 사(赦)함을 받는다. 합당한 형식을 갖춰 용서를 구하면 일단 그러리라 믿는다. 고해소에서 거부당한 사람들도 사회적 존재 자체를 위협받거나 믿음을 버리게는 말아야 한다. 신용불량자들이 너도나도 불안한 마음을 억누르고 고해소에 들를 날이 오기를 기다린다. 그 날은 아마 배드뱅크를 굿뱅크로 만드는 날일 것이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가을단풍 새 명소된 대전 장태산휴양림…인근 정신요양시설 응급실 '불안불안'
  2. [사설] 의료계 '정원 조정 방안', 검토할 만하다
  3. [사설] 충남공무원노조가 긍정 평가한 충남도의회
  4. 대전사랑메세나에서 카페소소한과 함께 발달장애인들에게 휘낭시에 선물
  5. 제90차 지역정책포럼 및 학술컨퍼런스 개최
  1. 대전 유성 둔곡 A4블록 공공주택 연말 첫삽 뜨나
  2. '한국탁구 국가대표 2024' 나만의 우표로 만나다
  3. 국방과학일류도시 대전 위한 교류장 열려
  4. 충남대병원 응급의학과 학술적 업적 수상 잇달아…이번엔 국제학자상
  5. 건양대병원, 시술과 수술을 한 곳에서 '새 수술센터 개소'

헤드라인 뉴스


아침밥 안 먹는 중·고생들… 대전 45% 달해 ‘전국 최다’

아침밥 안 먹는 중·고생들… 대전 45% 달해 ‘전국 최다’

대전지역 청소년들의 아침식사 결식률이 전국에서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적극적으로 대응해 학생들의 건강 증진이 절실한 상황이지만 대전교육청은 바른 식생활 교육을 축소한 것으로 나타나 대책 마련이 시급한 상황이다. 26일 교육부 2024 청소년건강행태조사 분석 결과에 따르면 전국적으로 학생들의 아침식사 결식률은 지난해보다 1.3%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해당 조사는 전국 800개 표본학교의 중·고등학생 약 6만 명을 대상으로 흡연, 음주, 식생활, 정신건강 등에 대해 자기기입식 온라인조사를 통해 진행됐다. 대전지역 학생들의 아침..

[기획] 대전, 트램부터 신교통수단까지… 도시균형발전 초석
[기획] 대전, 트램부터 신교통수단까지… 도시균형발전 초석

대전시가 충청권 메가시티 완성의 시작점인 광역교통망 구축에 힘을 쏟기 위해 총력을 다하고 있다. 도시철도 2호선 트램부터 신교통수단 시범사업 등을 추진하면서 도시균형발전 초석을 다지는 것을 넘어 충청 광역 교통망의 거점 도시가 되기 위한 준비에 나섰다. 28년 만에 도시철도 2호선 트램이 올해 연말 착공한다. 도시철도 2호선은 과거 1995년 계획을 시작으로 96년 건설교통부 기본계획 승인을 받으면서 추진 됐다. 이후 2012년 예비타당성 조사를 통과하면서 사업이 물꼬를 틀 것으로 기대됐지만 자기부상열차에서 트램으로 계획이 변경되면..

대전 유통업계, 크리스마스 대목 잡아라... 트리와 대대적 마케팅으로 분주
대전 유통업계, 크리스마스 대목 잡아라... 트리와 대대적 마케팅으로 분주

대전 유통업계가 다가오는 크리스마스를 겨냥한 크리스마스트리와 대대적인 마케팅으로 겨울철 대목을 노리고 있다. 우선 대전신세계 Art&Science는 본격적인 크리스마스 시즌을 앞두고 26일 백화점 1층 중앙보이드에서 크리스마스트리를 선보였다. 크리스마스 연출은 '조이 에브리웨어(Joy Everywhere)'를 테마로 조성했으며, 크리스마스트리 외에도 건물 외관 역시 크리스마스 조명과 미디어 파사드를 준비해 백화점을 찾은 고객이 크리스마스의 즐거움을 찾을 수 있도록 했다. 대전 신세계는 12월 24일까지 매일 선물이 쏟아지는 '어드벤..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12월부터 5인승 이상 자동차 소화기 설치 의무화 12월부터 5인승 이상 자동차 소화기 설치 의무화

  • 첫 눈 맞으며 출근 첫 눈 맞으며 출근

  • 가을의 끝자락 ‘낙엽쌓인 도심’ 가을의 끝자락 ‘낙엽쌓인 도심’

  • ‘우크라이나에 군사지원·전쟁개입 하지 말라’ ‘우크라이나에 군사지원·전쟁개입 하지 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