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칼럼]살아가는 내 모습이…

  • 오피니언
  • 독자 칼럼

[종교칼럼]살아가는 내 모습이…

  • 승인 2004-10-09 00:00
  • 홍광철 신부·대전교구청홍광철 신부·대전교구청
신약 성서에 ‘부자와 라자로’의 이야기가 있습니다(루가복음16,19-31).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두 사람은,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어떤 부자와 가난한 거지 라자로입니다. 부자는 매일 매일 호화로운 생활을 하면서 지냈지만 거지 라자로는 종기투성이의 몸으로 그 집 대문간에서 부자의 식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로 주린 배를 채우려고 했습니다.

호화로운 생활을 하던 부자에게는 거지 라자로의 모습이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재물을 가지고 자신만을 위해서 살아갔습니다. 자신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도 몰랐고, 자기가 가진 것을 나눌 줄도 몰랐으며,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지도 몰랐습니다. 결국 지옥에 가서야 자신의 잘못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식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로 주린 배를 채우려는 라자로의 삶은 ‘비참함’ 그 자체였습니다. 종기투성이인 그의 몸은 그를 더욱 비참하게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거지 라자로는 비참한 삶을 살아가고 있었지만 마음은 언제나 하느님께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비참한 자기 신세를 원망해보고도 싶고, 하느님을 부정하고도 싶었겠지만 그는 하느님께 감사하면서 살았습니다. “얻어먹을 수 있는 힘만 있어도 당신의 은총입니다”라고 고백하면서 하루하루를 살았을 것입니다.

거지 라자로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내가 어떤 처지에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가 무슨 생각으로 어떤 자세로 살아가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지금 이 순간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하더라도 미래를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중요하다….”

수녀원에서 운영하는 무료 급식소가 있습니다. 이곳에는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서 점심을 먹고 갑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바쁜 시간을 쪼개어 자발적으로 봉사를 하러 옵니다. 봉사하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기쁨이 가득 차 있지만 이런 저런 이유로 무료 급식소로 점심을 먹으러 온 사람들의 얼굴에서는 술 냄새가 진동을 합니다. 처음 무료급식소를 찾아오는 사람들은 왠지 부끄럽고, 죄 지은 사람처럼 들어오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바뀌어 갑니다. 마치 처음부터 그런 사람인 것처럼….

그런데 더러는 이곳에서 힘을 얻어 다시 일어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한 아저씨는 가끔 찾아 와서 쌀을 놓고 간다고 합니다. 직장을 잃고 가족에게 버림을 받았던 그는 삶을 포기하고 하루하루를 술로 지냈는데, 어느 날 수녀님께서 술 취해서 밥을 먹으러 온 그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많이 어려우신가 봐요. 하지만 포기하지는 마세요….” 그날 이후로 그는 여기저기에서 힘든 일을 찾아 하기 시작했고, 기회가 되면 쌀을 사서 급식소로 가져왔습니다. 이 쌀을 먹고 자신처럼 다시 힘을 찾으라고….

내가 어떤 처지에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가 무슨 생각으로 어떻게 살아가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을 생각했으면 좋겠습니다. 어리석은 부자처럼 그렇게 자신만을 위해서 살아가고, 자신의 이익에 관계되는 것이라면 다른 사람들은 전혀 생각하지 않는 그런 삶이 아니라 비록 내가 손해 본다 할지라도 다른 사람을 생각할 줄 아는 마음. 지금 너무도 힘들어서 포기하고 싶다 할지라도 한 번 더 힘을 내어 앞으로 가려는 마음. 그것이 바로 나에게 필요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지금 나는 어떤 모습입니까? 어리석은 부자의 모습입니까? 아니면 어려운 상황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고 하늘을 향하고 있는 라자로의 모습입니까?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가을단풍 새 명소된 대전 장태산휴양림…인근 정신요양시설 응급실 '불안불안'
  2. [사설] 의료계 '정원 조정 방안', 검토할 만하다
  3. [사설] 충남공무원노조가 긍정 평가한 충남도의회
  4. 대전사랑메세나에서 카페소소한과 함께 발달장애인들에게 휘낭시에 선물
  5. 제90차 지역정책포럼 및 학술컨퍼런스 개최
  1. 대전 유성 둔곡 A4블록 공공주택 연말 첫삽 뜨나
  2. '한국탁구 국가대표 2024' 나만의 우표로 만나다
  3. 국방과학일류도시 대전 위한 교류장 열려
  4. 충남대병원 응급의학과 학술적 업적 수상 잇달아…이번엔 국제학자상
  5. 건양대병원, 시술과 수술을 한 곳에서 '새 수술센터 개소'

헤드라인 뉴스


아침밥 안 먹는 중·고생들… 대전 45% 달해 ‘전국 최다’

아침밥 안 먹는 중·고생들… 대전 45% 달해 ‘전국 최다’

대전지역 청소년들의 아침식사 결식률이 전국에서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적극적으로 대응해 학생들의 건강 증진이 절실한 상황이지만 대전교육청은 바른 식생활 교육을 축소한 것으로 나타나 대책 마련이 시급한 상황이다. 26일 교육부 2024 청소년건강행태조사 분석 결과에 따르면 전국적으로 학생들의 아침식사 결식률은 지난해보다 1.3%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해당 조사는 전국 800개 표본학교의 중·고등학생 약 6만 명을 대상으로 흡연, 음주, 식생활, 정신건강 등에 대해 자기기입식 온라인조사를 통해 진행됐다. 대전지역 학생들의 아침..

[기획] 대전, 트램부터 신교통수단까지… 도시균형발전 초석
[기획] 대전, 트램부터 신교통수단까지… 도시균형발전 초석

대전시가 충청권 메가시티 완성의 시작점인 광역교통망 구축에 힘을 쏟기 위해 총력을 다하고 있다. 도시철도 2호선 트램부터 신교통수단 시범사업 등을 추진하면서 도시균형발전 초석을 다지는 것을 넘어 충청 광역 교통망의 거점 도시가 되기 위한 준비에 나섰다. 28년 만에 도시철도 2호선 트램이 올해 연말 착공한다. 도시철도 2호선은 과거 1995년 계획을 시작으로 96년 건설교통부 기본계획 승인을 받으면서 추진 됐다. 이후 2012년 예비타당성 조사를 통과하면서 사업이 물꼬를 틀 것으로 기대됐지만 자기부상열차에서 트램으로 계획이 변경되면..

대전 유통업계, 크리스마스 대목 잡아라... 트리와 대대적 마케팅으로 분주
대전 유통업계, 크리스마스 대목 잡아라... 트리와 대대적 마케팅으로 분주

대전 유통업계가 다가오는 크리스마스를 겨냥한 크리스마스트리와 대대적인 마케팅으로 겨울철 대목을 노리고 있다. 우선 대전신세계 Art&Science는 본격적인 크리스마스 시즌을 앞두고 26일 백화점 1층 중앙보이드에서 크리스마스트리를 선보였다. 크리스마스 연출은 '조이 에브리웨어(Joy Everywhere)'를 테마로 조성했으며, 크리스마스트리 외에도 건물 외관 역시 크리스마스 조명과 미디어 파사드를 준비해 백화점을 찾은 고객이 크리스마스의 즐거움을 찾을 수 있도록 했다. 대전 신세계는 12월 24일까지 매일 선물이 쏟아지는 '어드벤..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12월부터 5인승 이상 자동차 소화기 설치 의무화 12월부터 5인승 이상 자동차 소화기 설치 의무화

  • 첫 눈 맞으며 출근 첫 눈 맞으며 출근

  • 가을의 끝자락 ‘낙엽쌓인 도심’ 가을의 끝자락 ‘낙엽쌓인 도심’

  • ‘우크라이나에 군사지원·전쟁개입 하지 말라’ ‘우크라이나에 군사지원·전쟁개입 하지 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