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국민을 먹여 살리지 못하는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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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국민을 먹여 살리지 못하는 정치

  • 승인 2004-10-05 00:00
  • 이윤환 건양대 경찰복지행정학부 교수이윤환 건양대 경찰복지행정학부 교수
1863년 11월 19일, 남북전쟁이 끝난 후 펜실베이니아 게티스버그에서 국립묘지 개관식이 있던 날이었다. 개관식장에는 만 명 이상의 장병들을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미국의 16대 대통령인 링컨의 짤막한 연설문은 오늘날 산문시의 걸작으로 인정받고 있으며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는 이 세상에서 결코 사라지지 않으리라는 것을 다짐해야 합니다.”로 끝을 맺고 있다. 이 게티스버그 연설문의 의미는 주권이 국민에게 있고, 국민의 뜻에 따라 국민을 행복하게 하는 정치가 민주 정치라는 의미이다.

추석이 막 지난 지금 온 국민의 눈길은 이번에 확인된 추석민심에 쏠려있다. 민심이 흉흉하다. “물건은 작년의 절반도 안 팔리고 시장에서 사람구경할 수가 없다”“이러다가 IMF보다 더한 위기가 오는 게 아닌가, 앞으로 무슨 상황이 벌어질지 정말 불안하기만 하다 ”. 도시와 농촌, 장소와 계층을 가릴 것 없이 터져 나오고 있는 이 같은 분노와 좌절, 탄식의 소리가 하늘을 찌르고 있다는 것이 이번 추석에 귀향했다가 돌아온 정치인들의 변(辯)이다. 지금의 추석민심이 ‘폭발 일보전’임을 정치권 스스로도 시인하고 있음을 보도들은 전하고 있다. 추석 민심을 위정자들이 어떻게 받아들이고 느끼고 있는가는 앞으로의 행보를 지켜보면 알 수 있을 터이다.

경제는 어디까지 추락할지 짐작도 못할 지경인데 정치권은 다른 정파에 대한 적대감만을 키우면서 먹고사는 일과 무관한 여러 정치적 사안을 두고 극단적인 대립을 계속하고 있다. 물론 먹고 사는 일만이 최상의 가치라고 주장하고 싶지는 않다. 정치인들이 아무리 “국민을 위한다”고 외쳐대도 그것이 결국 ‘선(善)을 이루기 위해 악(惡)을 선택’하는 악순환의 정치로 귀결된다면 이러한 정치에서 민심을 얻을 수 있는 올바른 정책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하기란 어렵다. 이러한 정치의 악순환을 극복하지 않고서는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치’를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경제의 어려움에 대해서는 이제 대통령이나 경제부총리도 그 심각성을 느끼고 있는 듯하다. 추석 연휴를 맞아 노무현 대통령은 대(對) 국민 메시지를 발표하였고, 이헌재 경제부총리는 귀성객들에게 85만장의 편지를 돌렸다. 대통령은 “추석 대목이 없다, 추석상 차리기가 너무 빠듯하다는 말을 들으면 제 마음도 한없이 무겁습니다”라고 하면서 “희망을 가집시다. 나아질 것입니다”고 말했으며 이 부총리는 “다음 추석에는 국민 모두가 조금 더 큰 선물 꾸러미를 들고 고향을 찾으며 올해의 어려웠던 살림을 추억처럼 이야기할 수 있게 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심각한 문제는 국민대다수가 추석 민심이라는 형식을 통해 드러난 국민의 절절한 목소리가 현실정치에 반영되는 ‘국민에 의한 정치’가 이루어질 것으로 기대하지 않고 있다는 데 있다. 그동안 위정자들은 민심을 국정에 반영하는 ‘국민에 의한 정치’에 관심을 기울이기 보다는 민심을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호도하거나 조작하기 바빴다. 자기정파의 주장은 항상 ‘국민을 위한 정치’인 것으로 정당화하면서 국정 운영에 있어서 국민의 의사를 반영하는 ‘국민에 의한 정치’를 소홀히 해왔던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드는 것을 부인하기 어렵다.

현재 국회는 소위 민주개혁세력이 장악하고 있다. 과감한 개혁을 표방하고 있는 참여정부는 개혁에 따르는 갈등과 혼란으로부터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도 민심의 동의를 구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러나 민심은 정책을 올바르게 수립하고 집행하는 데에서 얻어지는 것이지 아전인수식의 일방적 주장에 의해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치’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정치권이 파당적 이익을 넘어 국민전체의 이익을 도모하는 대승적 발상의 전환을 이루어야 한다. 국민을 먹여 살리지 못하는 정치는 국민의 마음을 살 수 없다. 정치권의 자기수정능력이 절실히 요구되는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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