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어른이 묻는 말씀에 “왜?”를 달아도 질문의 내용에 따라서는 당연한 대답이 될 수 있습니다.
시대가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어른들의 잘잘못에 대해 아이들이 이의를 제기하는 것이 하나도 이상하게 들리지 않게 되었습니다. 어른들도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아이들의 되물음을 기꺼이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합리적 시대를 사는 방법입니다.
하지만 이 같은 아이들과 어른들 사이의 예절이 순조롭지 않은 것이 작금의 현실입니다. 동방예의지국이란 말까지 나올 정도로 우리나라는 예의 바른 나라였습니다. 그러나 옛것은 빛이 많이 바랬습니다. 온고지신이라는 말도 있었지만 요즘 그런 말은 잘 인용되지 않고 있습니다. 헌 것은 낡았을 뿐입니다. 집안에 영악한 자손들이 넘쳐 나기 때문일까요.
사회적으로도 옛것을 버리자는 말이 난무하고 있습니다. 나이 먹은 사람들을 “보수 골통”이라고 하더니 요즘에는“...을 칼집에 넣어서 박물관에 보내자”, “흑백TV시대의 것은 고화질 HDTV시대엔 맞지 않는다”느니 오래된 것이 구박받는 말들이 앞 다투어 회자되고 있습니다.
물론 언제나 부분적으로는 맞는 말이지만 과연 그럴까요. 집안에서도 나이 많은 어른들이 존경의 상이기는커녕 오히려 성가신 존재가 되어가는 세월입니다. 어려운 시대를 살아 온 나이 먹은 세대들에게는 분하고 억울한 세월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집안의 어려운 살림살이를 일으켜 배 굶주리며 자식들 키우고 공부시켜 놓았더니 공치사는커녕 사사건건 구박이나 주는 자손들. 늙고 힘없는 어른들의 노여움은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하지만 어른들에게도 잘못이 있고 실수도 있을 수 있습니다. 이제는 그야말로 박물관에 보낼 것은 보내고 흑백 저화질 TV는 그만 보아야 합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일본은 그야말로 혼돈의 시대를 맞았습니다. 전쟁을 이끈 구세대들에겐 정말 할말이 없었습니다. 전쟁에 패망을 하곤 후세들에게 무슨 면목이 있었겠습니까. 하지만 60년대와 70년대 일본의 경제발전을 이끈 세대들은 신세대가 아닌 구세대들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깨끗이 기업과 국가를 젊은 후세들에게 넘겨주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후배들은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그들은 지금도 전쟁을 일으키고 나라를 패망으로 이끈 주역들의 이름이 안치되어 있는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고 있습니다. 이웃 한국과 중국이 그렇게도 물고 늘어지는 신사참배를 해마다 강행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웃 중국의 근대사에서도 많은 이념적 소용돌이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우리처럼 과거사에 대해 그렇게 매달리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중국근대사의 인물 가운데 손문은 물론 심지어 장개석에 대해서까지 관대한 역사적 해석을 붙이는 것을 보았습니다. 대만에서는 지금도 곳곳에 장개석의 동상이 수도 없이 눈에 띄고 있기도 합니다. 거기에 비하면 우리들 주변에는 동상 하나 없습니다. 4·19때 이승만 박사의 동상이 데모대에 의해 거리에 끌려 나와 볼썽 사납게 흙먼지를 뒤집어 쓴 꼴을 보았을 뿐입니다.
집안에서도 똑똑한 자손이 나오면 우선 집안 살림살이를 정돈하고 나면 조상의 잘잘못은 저절로 드러나게 마련입니다. 조상이라고 무조건 잘한 일만 있겠습니까. 일본사람들이 전쟁을 일으켜 나라를 쑥대밭으로 만든 조상들을 원망만 하지 않고 야스쿠니 신사에 모셔놓고 해마다 예를 갖추는 것을 어떤 눈으로 바라보아야 할까요. 그렇다고 그들이 민족의 진정한 영웅을 구별할줄 몰라서 그렇게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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