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불구하고 명절이 다가오면 우리는 한 뜻을 가지고 절기의 의례를 지키고자 한다. 그 한 뜻의 핵심은 고마움의 표시이다. 일용할 양식을 만들어주신 하늘에 대한 감사와 오늘날 우리를 있게 한 조상에 대한 감사이다.
유성문화원은 추석제례 음식준비로 한창 바쁜 장날이었던 9월24일, 유성장터에서 의병을 일으켰던 문석봉 義士를 기념하는 행사를 가졌다. 유성의 역사적 인물발굴 작업의 일환이었다. 지금으로부터 109년 전인 1895년 9월18일(음) 을미사변을 계기로 유성장터에서 의병을 일으킨 문석봉 의병장과 의병들을 기리기 위해 유성장터에 기념비를 세웠다.
이날 행사는 기념비 제막식에 앞서 의병들의 넋을 기리는 살풀이 진혼무와 유성의병장 문석봉을 알리기 위한 마당극 형태로 재연하는 한편 문석봉 의사의 문집인 ‘義山遺稿’를 영인본으로 펴냈다. 오랫동안 준비해온 이 행사의 핵심은 의기(義氣)이다. 오늘의 우리가 의로운 기운을 전해받기 위함이다.
요즘 경제적으로 살기가 어려워졌다고 모두들 걱정이다. 구한말 당시는 오늘날 우리가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어려웠을 것이다. 무과에 급제하여 진잠현감으로 역임하기도 했던 문석봉 선생은 32세때 전라도 지역의 세곡을 걷어 서울에까지 배로 운반하는 직책을 맡았으나 당시 전라도에 퍼진 기근을 보고 곡식을 풀어 백성들에게 나누어준 죄로 체포령이 내려 피신하기도 했다. 45세때인 1895년 명성황후가 시해되자 문석봉 선생은 ‘천고에 없는 강상의 대변’이라고 통분하면서 의병봉기를 준비하였다. 공주와 대전 일대에서 사람들을 규합하여 9월18일(음) 유성장터에서 의병을 일으켰으나 관군의 급습으로 많은 사상자를 냈다.
오직 한 뜻은 나라를 지키고자 하는 의로운 기운들로 합심하여 대오각성으로 나섰던 것이다. 그 정신을 오늘의 우리가 감히 전해 받고자 한다. 당시보다 천배 이상 경제적으로 형편이 나아진 지금 본받아야할 얼이어야 할 것이다. 문석봉 선생이 남긴 문집에 이런 글이 있다. “우리는 감히 욕되게 사는 것보다 영광되게 죽고자 하는 마음으로 의병을 일으켜 적을 토벌하고자 합니다. 아, 우리나라 누구인들 신하가 아니며 누가 복수를 원하지 않으리오. 같이 일어나 대의로서 흉당을 멸망시키고 사직을 건지는 것이 매우 다행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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