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에 와서 정치인들의 입에서 ‘상생’이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그러나 당리당략에 치우쳐있는 정치풍토에서 상생의 정치를 기대하기는 어려운 것 같이 느껴진다. 17대 국회가 개원된 후 한 달이 넘도록 원 구성을 하지 못한 채 표류하더니 지금은 과거사에 매여 갑론을박하는 구태의연한 정치풍토를 보면서 상생의 정치라는 말이 우습게 들릴 뿐이다. 당초부터 기대하지도 않았던 일이긴 하지만 말이다.
더불어 사는 상생의 길에는 새로운 비전이 있어야하고 미래지향적 사고와 개혁이 있어야하며 이해와 관용, 비판과 협력이 조화를 이루어야한다.
우리 주변에는 돌봄과 나눔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너무나 많다. 위로와 격려 그리고 작은 도움의 손길을 기다리는 사람이 많다는 말이다. 사회악이 팽창하고 윤리와 도덕이 무너져 내리는 어두운 세상이긴 하지만 한편엔 나보다 먼저 이웃을 생각하며 희생적으로 봉사하는 착한 사람들도 많은 것이 사실이다. 사람이 마음의 초점을 섬김과 나눔이라는 미덕으로 조금만 바꾼다면 남을 돕는 것은 언제나 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남의 것을 도둑질하고 강도행각을 일삼고 폭력을 휘둘러 세상을 어지럽게 하고 사회질서를 파괴하는 그 뒤틀린 행동을 일삼는 사람들로 인하여 불안과 공포 속에 사는 우리의 현실이 얼마나 불행한 일인가! 우리가 조금만 생각을 바꾸고 서로 도우려하는 마음 문을 열고 상생의 정신으로 살아간다면 살맛나는 아름다운 미래시대를 열어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정의와 사랑이 어우러진 조화의 세상, 그런 아름다운 세상이 이상의 세계에 불과한 것일까, 우리의 마음가짐의 방향을 조금만 틀어본다면 분명히 세상이 달라질 것이라는 희망을 가져본다.
인도의 전도자 썬다싱의 일화에서 좋은 교훈을 얻는다. 어느 날 썬다싱이 티벳지방에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히말라야를 넘고 있었다. 산을 올라가다가 눈길에 쓰러져 죽어가는 사람을 발견했다. 같은 길을 가고 있는 길손에게 그 사람을 함께 데리고 가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그 길손은 한 마디로 거절하고 가버렸다. 썬다싱은 죽어가는 사람을 버리고 갈 수 없어 그를 등에 업고 있는 힘을 다해 걷기 시작했다.
한참 동안 가노라니 온 몸에 땀이 흐르기 시작했고 서로의 체온으로 인하여 등에 업힌 사람도 의식을 회복하게 되어 함께 산을 넘을 수 있었다. 그러나 도움을 뿌리치고 앞서 갔던 사람은 혼자서 가다가 추위를 이기지 못하고 싸늘한 시체로 변해 길가에 쓰러져 있었다.
이처럼 이웃을 향한 사랑과 돌봄 그리고 더불어 살고자하는 삶의 정신은 자기도 살고 이웃도 살리는 아름다운 결과를 가져왔다. 이것이 상생의 길이다. 이런 세상을 돌봄과 나눔이 어우러진 세상이라고 한다. 도움을 뿌리치고 가버린 그 길손은 혼자서 가면 살 수 있을 줄 생각했으나 그렇지 못했다.
그의 행동의 결과는 이 세상에선 이웃의 도움 없이 혼자는 살 수 없다는 교훈을 남겼으며, 남을 돕는 것이 곧 나를 돕는 것이라는 평범한 진리를 배우게 한다. 우리 모두 돌봄과 나눔이 있는 아름다운 세상 만들기에 앞장서면서 상생의 길을 달려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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