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단상]반장선거

  • 오피니언
  • 독자 칼럼

[교육단상]반장선거

  • 승인 2004-09-22 00:00
  • 최진규 서산 서령고 교사최진규 서산 서령고 교사
학년이 바뀌면서 새로운 아이들과 만난 지 사나흘밖에 지나지 않은 삼월 초의 일이다. 마침 학급활동 시간을 맞아 한 학기 동안 우리 학급을 이끌어갈 반장을 선출하기로 했다.

반장으로서 학급을 위해 성실히 봉사할 수 있는 학생을 추천하라는 말이 떨어지자마자 교탁 바로 앞에 앉은 혁이가 손을 들었다. 과연 누구를 추천할 것인지 궁금해하던 찰나에 혁이는 자신을 추천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반장을 못해봤기 때문에 이번만큼은 꼭 반장을 해보고 싶다는 것이다. 녀석의 추천 사유가 끝나자마자 아이들은 배꼽을 잡고 웃기 시작했다. 물론 나도 10년 넘게 담임을 해왔으나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혁이의 추천이 끝나자 다른 아이들도 몇 명의 후보자를 추천했다. 이렇게 해서 총 4명의 후보자가 결정되었고, 반장의 자질을 가늠해볼 수 있는 소견 발표 순서가 되었다. 한사람씩 발표를 마치고 드디어 혁이의 차례가 돌아왔다. 약간은 수줍은 듯 어렵사리 교단에 올라선 혁이는 “물론 저도 염치가 없는 줄은 알고 있지만 여러분이 뽑아주신다면 담임 선생님을 도와 정말 열심히 학급을 위해 봉사하겠습니다”라며 두 주먹을 불끈 쥐어 보였다.

드디어 개표가 시작됐다. 한 사람씩 후보자들의 이름이 호명될 때마다 아이들은 환호와 탄식을 쏟아냈다. 결과는 혁이가 아슬아슬하게 세 명의 후보를 물리치고 반장에 당선됨으로써 막을 내렸다.

그 후, 한 학기 동안 혁이는 정말 열심히 반장으로서의 역할에 최선을 다했다. 내년이면 고 3이 되는 동료들을 잘 다독거려 활기찬 학급분위기를 만들었다. 그런 노력 덕분인지 선생님들의 칭찬도 이어졌다. 아이들의 태도뿐만아니라 수업 반응도 좋아 가르치는데 보람을 느낀다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치르는 시험마다 일등은 당연히 우리반의 차지였다.

그렇게 한 학기를 무사히 마치고 새로운 학기가 시작되자 다시 학급을 이끌어갈 반장 선거가 다가왔다. 모두의 시선은 혁이에게로 모아졌다. 그러나 혁이는 자신을 추천하지 않았고 오히려 다른 친구들이 혁이를 추천했다. 혁이는 지난 학기 동안 처음으로 반장을 맡아 소원을 풀었다며, 이번에는 다른 친구에게 양보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그러나 급우들이 혁이에게 표를 몰아줌으로써 양보하겠다는 뜻이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지난 학기와는 달리 강제적(?)으로 반장 자리를 맡게 되었다.

지금도 혁이를 보고 있노라면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과장이 아님을 확인할 수 있다. 그렇게 해보고 싶던 반장의 역할을 스스로의 힘으로 이루어낸 혁이는 얼마나 행복할까?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가을단풍 새 명소된 대전 장태산휴양림…인근 정신요양시설 응급실 '불안불안'
  2. [사설] 의료계 '정원 조정 방안', 검토할 만하다
  3. [사설] 충남공무원노조가 긍정 평가한 충남도의회
  4. 대전사랑메세나에서 카페소소한과 함께 발달장애인들에게 휘낭시에 선물
  5. 대전 유성 둔곡 A4블록 공공주택 연말 첫삽 뜨나
  1. 제90차 지역정책포럼 및 학술컨퍼런스 개최
  2. 국방과학일류도시 대전 위한 교류장 열려
  3. '한국탁구 국가대표 2024' 나만의 우표로 만나다
  4. 충남대병원 응급의학과 학술적 업적 수상 잇달아…이번엔 국제학자상
  5. 건양대병원, 시술과 수술을 한 곳에서 '새 수술센터 개소'

헤드라인 뉴스


아침밥 안 먹는 중·고생들… 대전 45% 달해 ‘전국 최다’

아침밥 안 먹는 중·고생들… 대전 45% 달해 ‘전국 최다’

대전지역 청소년들의 아침식사 결식률이 전국에서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적극적으로 대응해 학생들의 건강 증진이 절실한 상황이지만 대전교육청은 바른 식생활 교육을 축소한 것으로 나타나 대책 마련이 시급한 상황이다. 26일 교육부 2024 청소년건강행태조사 분석 결과에 따르면 전국적으로 학생들의 아침식사 결식률은 지난해보다 1.3%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해당 조사는 전국 800개 표본학교의 중·고등학생 약 6만 명을 대상으로 흡연, 음주, 식생활, 정신건강 등에 대해 자기기입식 온라인조사를 통해 진행됐다. 대전지역 학생들의 아침..

[기획] 대전, 트램부터 신교통수단까지… 도시균형발전 초석
[기획] 대전, 트램부터 신교통수단까지… 도시균형발전 초석

대전시가 충청권 메가시티 완성의 시작점인 광역교통망 구축에 힘을 쏟기 위해 총력을 다하고 있다. 도시철도 2호선 트램부터 신교통수단 시범사업 등을 추진하면서 도시균형발전 초석을 다지는 것을 넘어 충청 광역 교통망의 거점 도시가 되기 위한 준비에 나섰다. 28년 만에 도시철도 2호선 트램이 올해 연말 착공한다. 도시철도 2호선은 과거 1995년 계획을 시작으로 96년 건설교통부 기본계획 승인을 받으면서 추진 됐다. 이후 2012년 예비타당성 조사를 통과하면서 사업이 물꼬를 틀 것으로 기대됐지만 자기부상열차에서 트램으로 계획이 변경되면..

대전 유통업계, 크리스마스 대목 잡아라... 트리와 대대적 마케팅으로 분주
대전 유통업계, 크리스마스 대목 잡아라... 트리와 대대적 마케팅으로 분주

대전 유통업계가 다가오는 크리스마스를 겨냥한 크리스마스트리와 대대적인 마케팅으로 겨울철 대목을 노리고 있다. 우선 대전신세계 Art&Science는 본격적인 크리스마스 시즌을 앞두고 26일 백화점 1층 중앙보이드에서 크리스마스트리를 선보였다. 크리스마스 연출은 '조이 에브리웨어(Joy Everywhere)'를 테마로 조성했으며, 크리스마스트리 외에도 건물 외관 역시 크리스마스 조명과 미디어 파사드를 준비해 백화점을 찾은 고객이 크리스마스의 즐거움을 찾을 수 있도록 했다. 대전 신세계는 12월 24일까지 매일 선물이 쏟아지는 '어드벤..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12월부터 5인승 이상 자동차 소화기 설치 의무화 12월부터 5인승 이상 자동차 소화기 설치 의무화

  • 첫 눈 맞으며 출근 첫 눈 맞으며 출근

  • 가을의 끝자락 ‘낙엽쌓인 도심’ 가을의 끝자락 ‘낙엽쌓인 도심’

  • ‘우크라이나에 군사지원·전쟁개입 하지 말라’ ‘우크라이나에 군사지원·전쟁개입 하지 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