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쌈은 예나 지금이나 다름없이 대표적인 여자들의 공동 작업으로 명주든 삼베든 틀과 함께 10여 개가 넘는 작은 도구를 엮어 한 필의 옷감이 나오기까지 들이는 공과 품은 어느 생산활동과도 비교가 안될 정도로 많이 든다. 날과 씨 하나 하나에 담긴 정성은 구성진 가락의 베틀가와 함께 잊을 수 없는 우리 나라 여인들의 고달픈 생활사의 하나였다.
신라 유리왕 9년에 왕이 육부(六部)를 둘로 나누어 왕녀 두 사람으로 하여금 부내의 여자를 거느리도록 하여 7월 16일부터 날마다 육부의 마당에 모여 길쌈을 시작하고 오후 10시경에 파하게 하여 8월 보름에 이르러 한 달 동안에 걸친 성적을 심사하고 진 편이 이긴 편에게 술과 음식을 마련하여 대접하며 노래와 춤으로 즐겼다. 이때 부르던 노래가 ‘회소곡’인데 그 내용중 한 구절이 ‘더도 덜도 말고 한가위만 하여라’이다. 이를‘가배(嘉俳)’라 하였는데, 이것이 곧 오늘날의 한가위(秋夕)이다.
한가위는 혈연간의 화목을 확인하고 조상의 덕을 추모해 제사를 지내며, 자기의 태어난 근본을 잊지 않고 은혜를 갚는다는 추원보본(追遠報本)을 실천하는 계기가 되었다. 서로 떨어져 사는 혈연들이 모여 화목하며 같은 조상의 제의에 참여하는 기쁨이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귀성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추석 풍속은 현대에도 의미가 크다. 산업사회가 가족의 분산을 초래했으나 추석은 그 피붙이들을 하나로 모으는 계기가 되고, 협동과 화목을 다지는 가교 역할을 하는 것이다. 각박하게 사는 현대인들도 한가위가 되면 정이 솟아 가족과 친척들에게 줄 선물과 조상의 차례상에 올릴 제수감을 사들고 고향을 찾는다. 어느 외국인은 추석날 조상의 묘소를 둘러보는 행렬을 아름답고 성스러운 광경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올해도 추석은 어김없이 찾아왔다.
그러나 올해 역시 풍요로운 한가위가 될 것 같지는 않다. 최악의 경기 불황으로 근로자나 기업들에게 그 어느 때보다 힘든 명절이 될 것 같다. 양로원이나 고아원 등 사회복지시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추석 연휴에 있을 외국 관광길 러시는 상대적으로 빈곤하게 느끼는 서민들을 다시 한번 절망하게 할 수 있다. 추석의 의미는 나눔에 있다고 한다. 결실의 계절인 가을, 우리 민족 최대의 명절인 추석이 수일 앞으로 다가왔다. ‘더도 덜도 말고 늘 가윗날만 같아라.’올해는 진정으로 우리 모두가 함께 듣고 싶은 말이 되길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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