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문화예술의 전당, 그 중심에 길게 드리워진 가로등에 나붙어 나부끼는 형형색색의 깃발로 채워진 제13회 전국 무용제가 막이 열렸기 때문이다.
지금 대전은 올 들어 부쩍 공연예술이 그 활기를 띠기 시작하더니 급기야는 빛 바랜 담장에 고운 색을 입힌 듯 새로운 모습 속에서 공연예술의 르네상스가 도래된 듯한 착각이 들 정도이다. 물론 그 배경에는 대전문화예술의전당의 공과 대전시립예술단의 활약에 자극을 받은 지역 예술인들의 각고의 노력이 실효를 거둔 것이 사실이지만 무엇보다도 대전 시민들의 문화의식이 급속도로 높아진 덕분도 아니라 할 수 없다.
이런 상황 가운데 다시금 풍요로운 가을 마냥 풍요로운 잔치가 벌어졌으니 다름아닌 제13회 전국무용제가 바로 그것이다. 1993년 제2회 전국무용제 때에 처음 대전에서 이 행사를 치른 무용계로서는 10년 만에 다시금 치르는 행사라서 그런지 분주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우리 대전시민들에게는 얼마나 큰 잔치인지….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필자는 지금 감성적인 매너리즘에 빠져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렇게 크고 이렇게 감동적인 잔치가 어디있을까 싶어 매일 하루일과를 쪼개어 생활하면서 그 자투리 시간을 모아 저녁마다 예술의 전당을 찾는다.
첫날 중국민속예술단의 ‘소수민족무용, 종합중국무용’ 이라는 약간은 평범한 제목의 개막공연 이후 모든 공연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관람하고 있다. 어제는 그 유명한 일본의 ‘살 바닐라’무용단의 40분 짜리 작품을 감상할 수 있었다. 시종 감탄과 찬사로 공허했던 대기를 가득 메우고 우렁찬 박수소리가 끊이지 않는 무대의 열기를 통해 ‘살 바닐라’무용단의 위력을 새삼 느낄 수 있었고 중국민속예술단의 작품 또한 관중들이 시선을 놓치지 않았다.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이라 했던가?
옛말 틀린거 하나도 없다! 육선(肉饍)이 가득하고 싸우는 집안보다는 밀죽을 먹고도 화목한 집안이 낫다는 말처럼 비록 청국장 한종기에 찬밥 비벼먹고 나왔을지라도 온 가족이 오순도순 손에 손잡고 이 가을을 음미하며 부담되지 않는 마음으로 좋은 축제에 참여한다면 그것이 더 큰 행복이 아닐까 싶다. 다행히도 그 모습인 듯한 가족들이 공연시간에 임박하여 몰려든다. 그 관객들의 모습이 예술의 전당 조형물과 함께 달밤에 아름다운 하나의 풍경이다.
비록 경연대회를 위한 무용제로서의 기능이 요구되는 행사일는지는 몰라도 이건 분명한 축제인 것이다. 이 많은 사람들이 무엇을 위해 이곳을 찾아왔으며 그 무엇을 안고 돌아갈 것인가를 분명히 해야할 것이다.
행동하는 사람들의 창조행위를 선박에 비유한다면 두가지 중요한 동기요인으로 항해를 할 것이다. 애초에 배를 뭍에서 바다로 떠미는 최초의 힘이자 항해하는 배가 바람에 맞서 제 길을 잡도록 하는 키로서 ‘이론(理論)’이 있다면 부푼 돛의 정도를 가늠하고 망망바다의 실체를 풍요롭게 인지함으로써 자연에 실례를 범하지 않도록 조정하는 ‘영감(靈感)’이 있다.
이 무용제에는 이 이론과 영감이 공존하는 축제의 장으로서 이곳을 찾는 모든 이들에게 무한한 망망 대해와 같은 상상력과 항해의 기쁨을 안겨다 주어야할 것이다.
지금까지의 이 축제의 장소에서는 그런 상상력과 기쁨을 안겨주고 있다. 참 감사한 일이다. 공연예술의 진미를 향유하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현대인의 의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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