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이 더 이상 독립적인 분야가 아니라 국가 산업과 사회, 특히 경제를 좌우하는 매우 영향력 있는 존재로 대두되고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최근의 이런 사회 경향을 인지하고 있다 해도, 첨단과학 연구기기 중의 하나인 슈퍼컴퓨터가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3년에 2조원 정도로 추정된다면, 쉽게 수긍이 가지 않을 것이다.
국가 슈퍼컴퓨팅인프라를 구축하고 있는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의 4.3테라플롭스(초당 4.3조번의 연산을 실행하는 속도)급 슈퍼컴퓨터의 구입가격은 3300만달러, 우리 돈으로 380억 정도다.
그러나 고려대학교 정부학연구소는 이 슈퍼컴퓨터를 3년 간 사용할 경우, 단순한 경제적 활용효과만 1조 7000억원, 부대적인 효과 4000억원, 그리고 사회적, 기술적 효과까지 감안하면 훨씬 더 막대한 경제적 효과가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어떻게 이런 추정이 가능한 것일까?
먼저 직접적인 비용절감 효과를 들 수 있다. 예를 들어, 김치냉장고를 개발할 때 각각의 상황을 직접 실험하는 대신 슈퍼컴퓨터를 통해 수백 가지 조건을 시뮬레이션 하면 비용을 10분의 1로 줄일 수 있고, 신차를 제작할 때도 2억원 상당의 더미인형과 1억원 상당의 시제차 대신 슈퍼컴퓨터를 이용해 충돌실험을 시뮬레이션 하면 수십억원의 개발비용을 줄일 수 있다. 슈퍼컴퓨터를 활용하면 제작비용 감축뿐만 아니라 개발기간을 단축하고, 개발성공확률 또한 높일 수 있다.
슈퍼컴퓨팅의 잠재적 경제효과는, 제품으로 직접 확인이 되는 가시적인 효과보다 훨씬 크다. 슈퍼컴퓨터는 기술의 상용화 단계보다는 기초과학 단계에서 훨씬 더 많은 역할을 한다. 때문에 그 잠재적 효과는 단순 수치로 계산할 수 없을 만큼 대단히 크다.
예를 들어, 최근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이 시신 100구를 1mm 간격으로 CT 촬영을 해서 만든 사이버 인간 ‘디지털 코리안’은 국내·외 산업을 인간공학 패러다임으로 전환시킴으로써 엄청난 부가가치를 가져다 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그러나 슈퍼컴퓨터가 CT 촬영된 사진을 평균화 해 3차원으로 재구성하지 않았다면 이와 같은 성과는 얻기 어려웠다.
과학기술의 기초 개발 단계에서 슈퍼컴퓨터가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례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한 나라의 경쟁력이 과학기술에 달려있고, 그 기술력이 근본적으로는 기초과학에 달려있다고 볼 때, 그 모든 것의 기저에 자리 잡고 있는 슈퍼컴퓨터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정부 차원에서도 기초과학 분야 기술개발의 필수도구인 슈퍼컴퓨팅 수준을 끌어올리고, 슈퍼컴퓨팅 인프라를 확산시키는 것이 장기적으로 국가 경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인지하고, 더욱 적극적인 투자와 지원을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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