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보더라도 물 건너간 게임이었다. 감동으로 새벽이 오는 걸 모른 사람들이 많았을 것이다. 파라과이와의 경기 때 도심 곳곳을 메운 응원인파를 보면 스포츠는 분명 사람들을 한데 묶는 힘이 있다.
선수들만이 뛰는 것이 아니다. 보는 사람도 운동선수다. 근육 대신 마음을 움직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마음의 경기장에서 선수들과 함께 뛴다. 나라 안 곳곳이 다 경기장인 셈이다. 우리를 함께 묶는 면에서 선수들은 분명 애국자다. 경기장의 함성, 시상식 자리에서 올라가는 태극기를 보거나 애국가를 들으면 자연히 국가나 민족을 떠올리게 된다. 현장에 있다면 가슴이 더 뭉클할 것이다.
정치를 하는 일부 사람들은 분열을 말하기도 하지만 경기에서 우리가 느끼는 것은 ‘우리는 하나’라는 것이다. 그 하나는 단지 ‘함께 하는 하나’라는 의미만이 아니다. ‘함께 희망을 갖는, 함께 미래의 꿈을 꾸는 하나’가 되므로 더욱 값지다. 선수들은 우리 모두를 함께, 희망의 꿈을 꾸게 한다. 잠시나마 우리의 무거운 일상을 벗게 하고, 지친 삶에 힘과 용기를 주는 존재다. 그들은 감내하기 어려운 정신적, 육체적인 위기를 극복한 사람들이다.
짧게는 4년, 길게는 8년, 또는 그 이상의 날들을 오직 경기만을 위해 집중해온 것이다. 한참 들끓는 나이들이다. 가족과의 정, 일상의 여유와 욕망을 억제하기는 쉽지 않는 일이다. 그러므로 경기에 참여하는 자체만으로도 이미 승리자다. 자기를 이겼기 때문이다. 만일 경기에 승리하면 그 승리는 두 겹의 승리다. 개인의 승리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기 민족의 승리로 승화되기 때문이다.
우리의 삶은 스포츠처럼 역동적이지 않다. 밋밋하고 힘겹다. 신통한 것이 거의 없다. 목숨을 걸 가치도 없고 맞서야 할 모험도 없다. 이 세상은 현미경과 망원경 속에 냉랭하고 투명하게 해체되고 말았다. 딱딱하고 기계 같은 세계가 우리를 둘러싼 꼴이다. 우리가 밟는 땅도 메마르고 건조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감동하고 꿈꾸는 일을 잊은 채 살고 있다. 사람들이 이토록 스포츠에 열광하는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니다. 견고한 세상, 껍질 속 삶을 사는 맥박 없는 몸을 잠시나마 벗어 던질 수 있기 때문이다. 경기를 보면서 우리는 잃어버린 인간적 심성을 되돌려 놓아야 한다. 선수들에게 배우면 된다.
그들은 피와 땀, 인내와 고통, 절제와 극기가 무엇인지를 알고 있다. 혼자 힘만으로는 안 된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감독과 코치, 선배와 동료, 가족과 국가가 함께 한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심지어! 상대할 적(?)도 있어야 한다는 사실도. 최선을 다하고 결과에 승복하는 일, 드러낼 줄 알면서도 뽐내지 않는 일, 무엇보다 자기에게 솔직하고 부끄러워할 줄 아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선수들은 무엇보다 메달을 따겠다는 꿈을 꾸고 그 꿈에 온 힘을 쏟은 사람들이다. 이 세상에도 여전히 꿈이 있고 꿈꾸는 사람과 그런 삶이 있다는 사실은 우리를 기쁘게 한다. 그들이 하듯 우리 자신도 꿈을 존중해야 하고 꿈꾸기를 사랑해야 한다. 그래서 이 땅의 건조하고 냉랭한 얼음을 녹여내야 한다. 우리가 경기를 보면서 생각할 것은 아직도 이 세상은 살만한 곳이고 좋은 뜻과 힘찬 일, 꿈꾸는 일과 희망이 여전히 가능하다는 사실이다.
특히 젊은이들이 밤잠을 자지 않고 열광하는 이유를 이 땅의 높은 사람들은 알아야 한다. 그들이 애국에, 민족에, 꿈에, 희망에 목말라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그들이 애써 만드는 이 애국의 물결을 귀중히 여겨야 한다.
그리고 이 땅의 힘겨운 장년층들도 살펴볼 일이다. 지금 선수들의 경기를 구경하면서 마음이 불구가 되어버린 자기 자신을 위로하는 사람은 없는지, 또한 경기를 대리체험 하면서 힘겹게 연명하는 사람은 없는지를. 본인도 그래서는 못쓰겠지만 나라도 그렇게 내버려두어서는 안 된다. 꿈은 개인만이 꾸는 것이 아니라 나라도 꾸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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