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칼럼]‘올림픽 폐인’의 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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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칼럼]‘올림픽 폐인’의 변명

  • 승인 2004-08-25 01:13
  • 안순택 논설위원안순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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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순택 논설위원
▲ 안순택 논설위원
은 종달새입니까, 올빼미입니까. 성공하려면 아침형인간이 돼야한다는 주장이 세를 얻으면서 내 생활습관이 종달새(아침형인간)인지, 올빼미(야행성인간)인지 돌아보게 됐다. 나는 어느 쪽이냐 하면 종달새든 올빼미든 시간에 관계없이 푹자고 상쾌하게 일어나는 게 중요하다고 믿는 사람이다.

그런 나도 요즘 ‘본의 아니게’ 올빼미가 되었다. ‘신들의 땅에서 벌이는 인간의 축제’ 아테네 올림픽 때문인데, 본의는 ‘조금만 보다 자야지’이지만, TV 앞에서 일희일비하다 날밤 새우는 일이 거의 매일이다. 꾸벅꾸벅 졸다가도 올림픽 얘기가 나오면 눈이 번쩍 뜨이는 걸 보면 ‘올림픽 폐인’이 다 되었다 싶기도 하다.

“그러다 직장 잘릴라”하는 핀잔을 들으면 스포츠란 원래 그런 것이라고 핏대를 세우기도 한다. 스포츠의 어원은 라틴어의 데포라타레(deporatare)라고 한다. 두음이 사라져 스포츠(sports)가 되었다는데, 그 뜻은 ‘저쪽으로+옮기다’, 즉 직장을 떠나 즐긴다는 뜻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스포츠를 즐기려면 직장을 잊는 게 당연하지 않느냐고 우겨보는 것이다.

생각해 보라. 우리 선수의 목에 메달이 걸리는 것을 보며 자신도 모르게 목젖이 떨려오는 감동을 누가 마다할 것인가. 숨죽이며 당기는 우리 선수의 활시위에 함께 숨죽이고, ‘한판승의 사나이’ 이원희가 쿵하니 상대를 눕힐 때 시름이 함께 무너지는 그 쾌청한 기분을 밤새지 않고 어찌 맛볼 수 있으랴. 56년 만에 8강에 오른 축구와 사상 첫 체조 남자의 은·동메달, 한국 사격 사상 트랩 종목 첫 은·동메달, 하나같이 박수를 그칠 수 없는 감동스런 장면 아닌가. TV 앞에서 밤잠을 설치며 깊은 밤도 아랑곳하지 않고 환호를 내지르는 이유, 선수들의 불굴의 의지 앞에 생의 의욕이 솟구치는 걸 오랜만에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올림픽을 보고 있노라면, 각국 선수들의 탁월한 기량과 포기하지 않는 도전정신에 많은 것을 배우게 된다. 아마도 그 첫번째는 ‘뭐든 제 할탓’이라는 겸손함일 것이다. 유도에서 동메달을 따낸 최민호는 몽골 선수와의 8강전에서 다리에 쥐가 나는 바람에 졌다. 주위에서 불운을 안타까워할 때 그는 “다리에 쥐가 나도록 평소 관리를 하지 못한 것도 실력”이라며 패배를 깨끗이 승복했다. 겸손함이 아름답지 않은가.

승리의 월계수 가지 하나를 이마위에 얹기 위해 인간이 할 일이란 결국 연습 뿐이라는 것도 참 의미심장하다. 메달 따는 것은 선수나 감독의 말이나 뜻만으로는 어렵다. 그만한 실력과 노력이 전제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우리의 현실도 마찬가지가 아니겠는가. 말이나 생각을 앞세운다고 하여 되는 일이란 거의 없다. 말과 뜻에 상응한 자기 훈련과 노력을 앞세워야 한다. 정치나 경제 분야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다.

올림픽이 주는 메시지는 개인이든, 국가든 하루하루 일상에만 안주해서는 미래를 담보할 수 없다는 것이다. 나폴레옹은 “현재의 고통은 잘못 보낸 과거로부터의 복수”라고 했다. 노무현 대통령을 비롯한 여야 지도급 인사들이 새겨야 할 경구다.

정말 역사의식이 있는 지도자라면 공허한 구호나 입씨름이 아닌 다음 세대를 위해 밑거름을 뿌리는 정치를 펴야 한다. 미래를 위한 정치라고해서 멀리 볼 필요는 없다. 당대의 개혁주의자라 할 정약용도 “(배고픈)백성을 먹여 살리는 일이 정치의 첫번째 과제”라고 했다. 디디고 선 현실을 직시하고 ‘남의 탓’이 아니라 ‘내 탓’임을 겸손하게 인정할 때에야 극복의 길도 미래도 보이는 법이다.

어쨌거나 우리 선수들이 투혼을 불태우는 선전으로 답답한 국민의 가슴에 희망이란 ‘신화’를 심기를 기대한다. 벌써부터 걱정이다. 올림픽이 끝나면 무슨 재미로 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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