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면서도 연일, 별 무소득인 독설들만 쏟아 내고 있다. 이게 우리 정당정치의 현주소다. 이것이 정당정치고, 이것이 민주주의라 우기면 할말은 없다. 그러나, 소가 웃을 일이다. 민주주의는 바른 정당정치의 토양에만 꽃을 피운다. 연꽃처럼 진흙탕에서도 민주주의가 피어날 것이라 착각하면 큰 오산이다.
혹자는, 우리의 정당정치가 파행을 겪는 이유를 민주주의 역사가 일천함에서 찾는다. 그렇다. 우리나라가 사실상의 민주주의 틀을 갖추기 시작한 것은 광복 이후부터다. 이때부터 정당정치를 시작한 걸로 따지면 우리의 정당정치 역사는 고작 58년이 전부인 셈이다.
이렇듯 채 60년도 안 되는 정당정치의 역사에서 영원한 국부이기를 자처했던 이승만 대통령이 창당한 자유당과 5.16 혁명 기반으로 탄생한 민주 공화당, 민주정의당에 이르기까지의 정당들은 늘 집권당 체제 유지를 위해 들러리만 섰다. 그래서 정당정치가 제대로 발전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3당 통합으로 독재 정권을 청산한 문민정부부터는 정당정치가 좀 제대로 됐어야 한다. 그런데 그렇지도 못하다. 교과서적이라 할 테지만, 정당정치의 본질은 정강 정책을 실현할 통치 기반을 마련하는 일이다. 쉼 없는 정당활동을 통해 수권 능력을 키우는 일, 그 그것이 곧 민주주의의 실현인 것이다. 과거 청산도, 국가의 정체성 확보도 중요하다. 당면한 개혁은 무엇보다 더 중요하다.
하지만 올바른 민주주의를 위해서 우리는 이쯤에서 한국의 정당정치가 왜 이리 엇나가고 있는지, 왜 생산적인 상생의 정치를 할 수가 없는 것인지 그 연유를 좀 따져 봐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천문학적 정치자금이 뿌려지는 미국의 정당정치를 내놓고 부러워 할 일은 아니다.
하지만, 정당정치에 관한한 미국이 부럽다. 미국 공화당은 보수를 민주당은 개혁을 표방한다. 200년에 가깝도록 이름 한번 바꾸지 않고, 그들은 정책 대결로만 정권을 주고받는다.
정당은 ‘국민과 정부를 연결하는 매우 중요한 통로다.’ 그렇다. 정당은 사회집단의 이념을 정치활동으로 전환해낼 능력을 보유해야 한다. 그리고 국민 대중의 정책 집합을 촉진하기 위한 상시 체제도 유지돼야 한다. 이두가지가 정당의 생명력이고 참 민주주의를 가꿔 내는 정치의 기본이다.
정당을 선거도구로만 여기면 그것은 이미, 민주주의가 아니다. 그들은 정치 활동 그 자체 보다 정당의 이념을 더 소중히 여긴다. 그리고 민주주의와 정당정치의 가치를 바로 안다. 그래서 그들은 정당정치로 사회갈등을 봉합하고, 그렇지 못한 우리는 정당정치로 사회 갈등을 유발한다. 이것이 정치선진국과 후진국의 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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