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반 말썽꾸러기 이 정호. 2003년 3월 학교를 옮기면서 저학년 담임에서 처음으로 5학년담임을 맡게됐다. 아이들과의 첫 만남 시간. 조금은 떨리는 마음으로 아이들 이름을 차례차례 부르면서 눈인사를 나누고 있을 때 정호가 눈에 확 띄었다. 삐딱한 자세로 손장난을 계속 하면서 뒤에 앉아 있는 친구와 떠들고 있는 아이.
정호는 하루에 한번씩은 꼭 혼이 나는 그런 아이였다. 4학년때까지도 공부시간에는 늘 한쪽 손으로 턱을 괴고 엉덩이는 뒤로 쭉 빼서 앉아 있고, 자기 마음에 들지 않으면 욕을 하면서 주먹을 휘둘렀다.
책상서랍과 사물함은 늘 여러 가지 물건들로 어수선했고, 교과서도 제대로 챙겨오지 못하는 일이 자주 있었다. 잔소리도 하고, 벌도 주고, 타이르기도 했지만 정호의 행동은 나아질줄 모르고 계속됐다.
‘정호의 부모님은 어떤 분이실까? 정호 문제로 상담을 드려도 괜찮을까?' 혼자 고민하던 때, 마침 정호의 어머니가 학교에 찾아 오셨다. 정호가 2학년때부터 산만하고 말썽을 피웠다는 이야기며, 정호가 큰아들이라고 사랑을 표현하지 않고 엄하게 키운 이야기, 동생은 정호와 정반대로 집에서나 학교에서나 칭찬만 받는다는 이야기 등을 하셨다.
정호 어머니께서는 “선생님, 우리 정호가 정서불안 증세가 있대요. 무조건 혼내는 건 아이에게 하나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하네요." 순간 난 속으로 얼마나 창피했는지 모른다.
무조건 정호를 혼내기만 하던 내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다음날 교우관계조사를 먼저 하고, 정호와 같이 앉고 싶어하는 아이들로 모둠을 구성했다. 공부시간에 정호가 발표라도 하면 아이들은 “이정호, 제법인데…"하면서 아낌없는 칭찬박수를 쳐주었다.
정호를 유심히 관찰해보니 겉으로 보이는 성격과 달리 글도 잘 쓰고, 발표할 때 자신의 생각도 조리있게 정리해서 말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정호가 국어시간에 자신의 글을 발표할때면 더욱 더 많이 칭찬해주고 격려해주었다.
지금의 정호는 가끔은 욕도 하고, 아이들에게 화도 내지만 친구를 배려할 줄 알고 친구들에게 사랑을 베풀어주며 남에게 나누어줄 줄 아는 그런 아이로 변했다.
정호는 이제 곧 우리 곁을 떠난다. 가족이 모두 중국으로 떠나게 된 것이다. 누구보다 나를 힘들게 했고, 그래서 지금의 변화된 모습에 뿌듯함도 느끼게 하는 정호.
정호가 떠난 빈 자리를 보면 한참 동안 참 많이 서운하고 울적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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