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경제가 어렵다 느니, 살기가 점점 힘들다느니 들 하지만, 이렇게 매스컴을 통해서 엿보게 되는 시민들의 모습은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무더운 여름철에 산과 바다를 찾아서 피서를 즐기는 인파가 늘어나는 것이야 시쳇말로 잘 먹고 잘 살려고 하는 시대의 흐름에 비추어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혹시라도 며칠 시원하게 보내겠다고 기둥뿌리 뽑아서 피서가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을는지 걱정스럽다.
사회의 풍조가 이렇게 변하고 보니, 내일 세계의 종말이 오더라도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미래에 대한 신념들보다는 오늘을 먼저 즐기려고 하는 순간의 쾌락들이 더 많이 사람들의 마음을 지배하고 있는 것 같다. 이래서 웰빙(well- being)이라는 말이 그렇게 널리, 또 쉽게 받아들여지고 있는지도 모르지만, 매스컴들마저 내핍이나 알뜰피서 등에 대해서는 입치레에 그치고, 이런 과소비적이고 무계획적인 피서 행태를 당연한 뉴스거리로 받아들이는 것 같아서 아쉽다.
더위가 물러간다는 처서나 아침저녁으로 구슬 같은 이슬이 풀잎에 맺히기 시작한다는 백로까지는 한달 가까이 더 있어야 한다.
이러고 보면 당분간 이런 무더위를 더 겪어야만 하는데, 곳곳의 피서지에서 여가를 즐기는 사람들은 이렇게 길고 무더운 여름동안 고작 며칠, 길어야 1주일 안팎의 피서를 하고 나면 그 뒤부터는 나날이 달아오르는 무더위쯤은 쉽게 잊을 수 있는 것인지 궁금하다. 혹시라도 남이 장에 가니 덩달아서 솥뚜껑 머리에 이고 따라 나선다는 속담처럼 뚜렷한 계획이나 대책도 없이 즉흥적인 행동으로 피서를 즐기느라 얄팍한 살림을 더욱 축내고 나서 후회하는 불쌍한 가장들이나 혹시라도 친구나 연인들과 쓸 바캉스비용을 마련하려고 순간적으로 범죄의 구렁텅이로 빠져드는 젊은이들은 없을지 걱정스럽다.
걸핏하면 남의 나라를 들먹이는 것도 사대주의적 발상이지만,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여러 나라에서는 1년 전부터 여름철 바캉스 갈 곳을 고르며, 계획을 세우고 1년 내내 유급휴가를 아껴두었다가 피서철에 한꺼번에 한 달가량 즐기는 것이 보편화되어서 바캉스 철에는 그 나라의 산업생산량이 줄어들고, 도시는 마치 철시한 것처럼 텅 비게 된다는 그런 계획성 있는 피서계획은 아직 이른 것일까?
그래서 일시적으로는 생산의 감소가 되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심신의 재충전으로 생산량의 증가를 가져오고,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계기가 된다는 말은 부럽기만 하다. 2001년 가을 유럽 6개국을 여행할 때 우리의 마티즈나 아토즈 정도의 미니 차 뒤마다 앰뷸런스만큼씩 큰 캠핑카들을 매달고 달리는 수많은 바캉스 족들을 보면서 그들의 알뜰피서나 바캉스문화를 짐작해 볼 수 있었다. 물론, 중대형 자가용차들도 그런 캠핑카를 뒤에 매달고 다녔지만…….
그들에 비해서 국민소득도 낮은 우리는 아직 비싼 돈 들여서 외국의 해변이나 산을 찾는 피서보다는, 그리고 며칠동안 국내의 유명 산과 강을 찾느니보다는 매주말 시골집을 찾거나 가까운 계곡이라도 더 자주 다녀오는 것이 이 무더운 여름을 이기는 더욱 알뜰 피서가 되고, 현명한 피서가 되지 않을까?
아직은 풍요의 시대가 아닌 결핍의 시대이기에.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