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현대의 철학자들은 현대 사회가 지닌 심각한 문제적 국면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안으로 타자를 말해 왔다. 프랑스의 데리다, 푸코, 라캉 등은 타자의 철학을 제창하면서 현대적 주체 철학이 지닌 배타적이고 이분법적인 서열주의를 극복하자고 주창했다.
그들은 인간과 자연, 남성과 여성, 서양과 동양, 이성과 감성, 정신과 육체, 주류인과 주변인, 의식과 무의식 등을 이항대립적 관계로 보는 현대 철학에 반대한다. 전자를 주체로, 후자를 타자로 보고 주체에게 절대적으로 우월한 지위를 부여해온 데서 파생된 현대 사회의 여러 가지 문제점들을 해결해 보자고 했던 것이다.
탈현대의 철학은 현실 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20세기 후반기 이래로 문화인들은 그들의 작품 속에서 자연, 여성, 동양, 감성, 육체, 주변인, 무의식 등으로 대표되는 타자들의 권리를 회복시키고자 노력했다. 최근의 문학이나 영화, 건축, 회화 등에서 페미니즘이나 생태 문제가 초미의 관심사가 되어 온 것은 탈현대 철학의 타자에 대한 관심과 깊이 관련된다. 요즘 유행하는 퓨전 문화도 타자가 권리를 회복하는 과정에서 파생된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우리 시대는 분명 타자의 시대이다. 타자의 시대가 지닌 가장 큰 장점은 다원적 가치관에 기반을 둔 다양한 문화 현상들의 공존이다.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사회는 다양한 메뉴의 음식을 골고루 먹을 수 있는 식당처럼 건강하고 풍요로운 삶의 토대가 된다. 아무리 고급스러운 음식일지라도 그것 하나만으로는 풍성한 식탁을 차릴 수 없기 때문이다. 타자의 존재는 건강하고 풍요로운 삶의 필수 요건이다.
주체니 타자니 하는 철학적 개념들을 인간 사회에 대비하여 설명하자면 주체는 ‘나’이고 타자는 ‘너’이다. 거창하게 탈현대 철학을 운운하지 않더라도 인간은 ‘나’ 혼자만이 살아갈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전근대적인 정의에서조차도 인간은 ‘너’와 함께 힘을 모아 공존 공영해야 하는 존재다. 탈근대 철학은 ‘너’와 함께 하는 ‘나’의 삶의 소중함을 새로운 버전으로 강조했을 뿐이다.
‘나’의 삶을 건강하고 풍요롭게 하는 비결은 타자를 인정하고 수용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나’와 ‘너’의 다름을 인정하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 다른 사람의 ‘다름’을 곧장 ‘틀림’이라고 규정해 버리는 사람은 타자의 시대를 살아갈 자격이 없다. 그는 인간의 본성과 시대의 본질을 읽지 못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타자에 대한 배려와 인정을 진정한 민주주의 사회의 근간이기도 한다.
지금, 우리 사회에는 마음속에 타자가 없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그들은 사소한 일상사에서부터 국가적 대사에 이르기까지 사사건건 ‘나’의 주장을 따르지 않는다고 해서 극단적이고 감정적인 대응을 하곤 한다. ‘나’만이 혼자 살고 있는, 그래서 ‘나’와 다른 ‘너’의 존재를 무시해 버리거나 ‘너’를 적대시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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