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간 점검 차원에서 전교사가 해야한다는 연구수업인지 공개수업인지 때문에 연구부장은 나를 보기만 하면 음악도 날 잡으라고(?) 성화였다.
연구학교 중점과제가 ICT활용 수업인데 음악실에는 컴퓨터도 없고 프로젝션 TV도 없으니 무엇을 어떻게 개선해서 보여주어야 되는지 막막하기만 했다. 내키지 않았지만 더 이상 어쩔 수가 없어 우리 학교에서 제일 잘 나간다는 모 반과 의기투합했다.
어쨌든 죽을 쑤어도 해야 될 판국이라 대충 판을 짜 보았는데 감이 잡히질 않았다. 기악부문 수업을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악기를 활용해서 직접 보고 듣는 걸로 대체하기로 했다. 본 수업을 하는 날 아이들이 가져온 악기는 가야금과 오카리나, 피페, 바이올린, 리코더, 알토리코더, 단소, 못 빌릴 것 같다던 아코디언까지 그런 대로 다양했다.
수업을 시작하기 전 음악실에 기자재가 없어 제출한 지도안과 약간 차이가 있다고 설명은 했지만 그래도 올해 학교 중점 사업이라는데 교장, 교감 선생님 눈치가 보여서 영 마음이 불편했다. ‘하지만 어쩌랴 이미 시작한 것을 눈 딱 감고 해 보는 수 밖에.’
일단 가장 기본적인 피아노 연주부터 들어본 다음, 리코더 2중주를 들었는데 화음 때문인지 듣기도 좋았고 소프라노 리코더와 알토 리코더의 소리를 비교하고 연주하는 방법도 배웠다.
평소에는 하찮게 여기던 악기였는데 중주를 하니까 너무 아름다워서 아이들도 연신 고개를 끄덕인다. 오카리나라는 악기는 많이 알려져 있지만 우리 아이들은 처음 보는 듯 시선이 한 곳으로 몰린다.
바이올린은 발라드곡을 연주했는데, 어느새 아이들은 노래를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단소는 아리랑이나 들려줄려나 했더니 갑자기 ‘오나라’를 연주해서 모두 웃음바다가 됐다. 이어 맑은 피페 연주도 듣고 기대하던 아코디언, 가야금까지 아이들의 의욕과는 달랐지만 제법 뚱땅거렸다.
처음 시작할 때는 어떻게 진행해야 될까 걱정이 많았는데 악기마다 특징과 소리를 듣고 비교하다 보니 예상보다 훨씬 재미가 있다. 공개수업이 그렇게 지나가고 수업을 보신 다른 선생님들은 어떻게 평가를 하셨는지 모르겠지만 우리 아이들과 나 만큼은 흥미진진한 수업이었고 그 여운 때문에 한참 동안 행복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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