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어느날 갑자기 일인(日人) 교장이 조회석상에서 전쟁에 졌다고 울부짖는 바람에 우리들도 대성통곡을 하고 함께 울었습니다. 물론 그때 우리들의 성과 이름은 일본식 이름이었고 일본의 황국신민(皇國臣民)이었습니다. 집에서는 조선말을 쓰고 학교에서는 일본말을 쓰면서도 왜 그렇게 하는지는 생각도 해 보지 못했습니다.
1950년 6·25동란 전후 우리세대들은 극심한 좌우사상의 소용돌이에 휘말렸습니다. 전국 각지에서 날마다 폭탄이 터지고 총성이 울렸습니다. 요즘의 이라크와 흡사했습니다. 일부 산간 지방에서는 낮에는 대한민국 밤에는 인민공화국이 번갈아 차지한 때도 있었습니다. 군사 쿠데타가 일어난 후 나는 신문기자가 되었습니다. 어느 날 일괄사표를 내라고 하여 사표를 내고 하회를 기다렸습니다. 사표가 수리된 사람들은 언론사를 떠났습니다.
그들은 그 시대를 살기에는 부적절한 사람들이라는 낙인이 찍혔습니다. 나는 다행인지 불행인지 사표가 수리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기자가 출입하는 출입처에서 주선해 주는 산업시찰을 그것도 해외시찰 여행을 여러 번 다녀왔습니다.
다시 군사정권이 들어서자 또 일괄사표를 냈고 그땐 제 사표도 수리되었습니다. 40대 중반에 실업자가 된 필자는 나의 뒤를 따라 다니는 신원조회 때문에 다른 직장을 얻을 수가 없었습니다.
다시 문민정부가 들어서자 당국이 그 당시의 해직기자들의 신고를 받았습니다. 해직기자가 민주운동가라며 그들의 명예를 회복시켜준다는 취지였습니다. 그러나 나는 나 자신이 스스로 민주운동을 했다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신고를 하지 않았습니다. 요즘 필자는 필자의 정체성에 대해 전에 없이 고뇌하고 있습니다.
나는 과연 시대적으로 어떤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가 스스로 자문해 보는 것입니다. 나는 일정 때는 일본이 전쟁에서 이기기를 매일 기도하는 황국신민이었고, 제나라를 갖고서는 신문기자가 되어 군사독재정권 아래 신문사에서 주는 여비가 아닌 출입처의 예산으로 해외 산업시찰을 다녀왔으며, 그밖에 그 시대 그 시대에 범람하던 사회적 부조리의 관행에 동참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신문기자도 하나의 생활인과 동시에 지식인이기에 이 같은 시대적 고뇌에 빠지는 것은 오히려 당연하다고 믿고 있습니다.
하지만 신문기자도 하나의 보통 인간이라면 한 가지 변명은 있습니다. 그것은 보통사람이라면 그 시대 그 시대에 그렇게 할 수밖에는 없었을 것이라는 변명입니다. 일정 때 창씨개명을 하지 않고는 살수 없었듯이 군사정권에서도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견디기 힘들었다는 사실입니다. 직장을 그만두면 되지 않느냐고 말할지 몰라도 대부분은 그렇게 못 합니다. 그것은 기업인이나 공무원이나 다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한 어항 속에 함께 숨 쉰 금붕어들인 셈이지요. 그 물을 마시지 않고는 살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신(新)정권이 들어 선 후 국가의 정체성에 대해 무성한 논쟁이 계속되고 있는 것을 압니다. 이 기회에 우리 국민들은 모두가 자신의 정체성을 한번 확인해 봤으면 합니다. 자신은 과연 대한민국의 역사에 어떤 정체성으로 참여하고 살았는지 생각해 봄직 하지 않습니까. 자신의 정체성이 확인되면 스스로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알게 될 것이고, 혹시 부정적인 정체성이 확인됐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국민을 그만두시겠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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