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 다리를 1951년 5월 31일 이후 대전 공업중학교 근무 시절에 걸어다녔다. 그 때는 다리가 시멘트가 아니고 나무였다. 지금은 현대식 쇠 난간이다. 설명판에 1976년 9월 28일 준공이라 써 있다. 준공이 아니고 ‘아주고침’이나 ‘개축’이라 써야 옳다.
목척교 아래 다리는 선화학교에서 건너가는 다리인데 건너면 왼쪽은 삼성동이고, 오른쪽은 중동이다. 도마교처럼 이름짓기가 난처하다. 중동교라 하자니 중교와 이름이 비슷해서 헷갈린다. 삼성교라 하자니 삼성동에서 삼성동으로 대동천을 건너는 것이 제1삼성교, 여기에서 철교쪽으로 넓게 놓은 새 다리는 제2삼성교이다.
그래서 삼성교라고 할 수 없다. 그 대동천 끝나는 곳 보문중고 근처에 다리가 있는데 북부교이다. 이 다리는 방향을 표현했다. 어디를 기준해야만 옳은지? 보문다리라고 했더라면 더 쉽게 기억할 것이다.
영교는 선화학교에서 가까우므로 흔히 선화다리라고 한다. 그러나 교명판은 영교라고 새겨 있다. 이 영(榮)은 일제 강점기에 삼성동 중동이 다 영정이었으므로 영교라고 한 것이다. 중구청 다리 대장에는 1970년대 모월 모일에 시공이라 써 있단다. 이것은 유등교처럼 잘못 쓴 설명판이다.
유등교에는 현재 1970년 6월 15일 시공이라 새겨 있다. 이것은 일부 고침이나 보수라고 했어야 한다. 한밭도서관에 1940년도 대전부내 정 경계도(大田府內 町 境界圖)가 있다. 이 지도에 榮橋(영교)라 써 있다. 일제 강점기에 이 다리를 건너다닌 영정소학교(삼성학교)를 졸업한 현재 80세 노인들은 サカエバシ(사카에바시)라고 불렀다는 기억을 말한다.
버드내에 버드내다리가 생긴 것을 보고서 한밭내에도 한밭내다리가 있으면 좋을 것이라는 생각이 떠 올랐다. 영교를 건너간 영정 일대가 지난날 대전군 대전면 대전리(大田郡 大田面 大田里)이다. 이 대전리도 대전천도 한밭들 한밭내이다. 그래서 영교를 한밭내다리라고 하면 아주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서구 호남선 철교 이름에 괴곡철교가 있다. 우리 고향 평촌에서 6km 쯤 거리이다. 우리 고향 사람들은 이 철교를 오야미공굴, 괴곡교를 오야미다리라 부른다. 시청을 기준한다면 괴곡교는 괴곡동에서 흑석동의 자연 마을인 오야미에 이르는 다리이다. 그러나 오야미는 법정동명이 아니고 고유어인 자연마을 이름이다. 그래서 괴곡교 괴곡철교라 한 것으로 본다.
일본인은 다리교를 음으로 읽지 않고 훈으로 읽기 때문에 한자로 쓴 다리를 읽을 때 일본말이 죽지 않는다. 석교(石橋)는 イシバシ(이시바시)다. 위에 든 보기는 다리 이름이지만 산 이름 내 이름 들 이름 길 이름 등 모든 말이 다 그렇다.
우리는 石橋를 돌다리라 아니 읽고 석교라 한다. 말은 자꾸 쓰면 살고 아니 쓰면 죽는다.
그래서 한자를 마구 쓰면 우리말이 죽으니 우리말을 죽이지 않는 다리 이름을 주장하는 것이다. 제 본디말을 살려서 한자를 쓰는 일본과 우리와는 차이가 있다. 이 차이는 매우 소중한 문제다.
이것을 생각지 않고 한문 시대의 다리 이름 준례를 이어나가려는 방법은 한글문화와는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우리말을 죽이면서까지 한자어 다리를 짓는 것은 한글 문화에 애착이 없다는 증거다.
대전에는 버드내다리, 용태울다리, 밤갈미다리, 석봉구름다리, 불티구름다리, 고릿골구름다리, 석봉굴다리, 대동굴다리, 서대전굴다리, 오류동굴다리 등이 있다.
다리 이름에서나마 우리 ‘다리’라는 낱말을 살려 쓰는 것은 ‘○○도’를 ‘○○섬’으로, ‘○○로’를 ‘○○길’로, ‘○○평야’를 ‘○○들’로, ‘○○곡’을 ‘○○골’로 바꾸는 문을 여는 것이나 다름없다.
한글 문화 발전의 높은 뜻을 살려서 ‘영교’를 ‘선화다리’보다 ‘한밭내다리’로 하는 것을 주장한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