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상수 편집부국장 |
학력신장과 인성교육, 어느것이 우선이냐? 교육계의 영원한 숙제인 이 문제가 또다시 도마위에 오른 셈이다. 사안이 사안인만큼 교육계 안팎의 찬반 논쟁 또한 뜨겁다. 찬성쪽의 의견은 대략 이렇다. 현재의 서술형 성적표로는 자녀들의 학력수준을 정확히 알 수 없을 뿐아니라 인성 적성 특기교육에 치우치다보니 기초학력에 소홀해 질 수 밖에 없다. 이런 현상은 전반적인 학력부진의 원인이 되어 결과적으로는 중, 고교까지의 성적 질저하로 이어진다는 논리다. 반면 반대하는 쪽의 생각은 다르다.
초등학생에까지 성적을 서열화하는 것은 교육을 10년뒤로 후퇴시키는 것으로 성적 줄세우기로 인한 사교육 열풍 폐해를 반복하자는 의도다. 결국 기존 교육의 틀을 완전히 무너뜨리는 결과만 초래할 뿐이라는 논리다. 여기에 절충형의 의견도 만만치 않다. 학교에 자율권을 주자는 것으로 시험을 치를 수 있는 선택권을 학교에 주고 성적표도 서술형을 하든 등급형을 하든 모든 것을 학교에 맡기자는 것이다. 그런데 이들 의견뒤엔 하나의 공통분모를 갖고 있다. ‘교육의 잘못됨에 대한 경계심리’가 바로 그것이다.
학력신장과 인성교육, 흔히 이 둘은 교육의 양대 축으로 불린다. 때문에 일선 교육현장에서는 이 둘의 조화를 극대화 하기위해 전교육력을 집중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 둘은 그리 쉽게 융화되지 않는게 사실이다. 계란세우기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아니 어쩌면 현행 우리의 교육제도하에서는 영원히 양립할 수 없는 두 기둥일지도 모른다.
지역대학의 한 원로 교육학자는 우리의 현 교육제도를 인체의 소화기관에 비유, 설명하고 있다. 우리 몸에 영양분을 공급하기 위해서는 음식물을 입에 넣고 씹어야 한다는 것. 이 씹는 과정을 맡고 있는 ‘입’을 의무교육단계(초등학교)라 한다면 ‘식도, 위장’은 중등교육단계(중·고등학교), ‘대장’은 고등교육단계(대학교)라는 것이다. 때문에 씹는 과정이 부실하면 소화기관 전체가 부실하게 되고 결과적으로는 탈이 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현행 우리의 교육제도는 최소한 이 단계에 해당된다는 것이 그의 분석이다.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그의 논리에 수긍이 간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모든 병이 그렇듯 방치하면 증세가 더욱 악화되기 마련이다. 기왕 탈이 난 소화기관이라면 하루라도 빨리 치유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욱 확실하고 좋은 방법은 ‘예방’ 일 것이다.
교육이 지향하는 가장 중요한 목표는 인간의 知, 德, 體의 능력을 고루 연마해 가치있는 인격체를 형성해 나가는 것이다. 따라서 교육이 제대로 꽃을 피우기 위해서는 개개인의 가치있는 고유 능력을 발굴, 그 능력을 펼칠 수 있는 터전을 만들어 주는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개개인의 소질, 적성, 능력, 흥미, 필요성이 다르듯 교육의 목표, 내용, 방법에 대한 선택의 폭도 그래서 다양해야 함은 당연하다.
학력신장과 인성교육이란 양대 축이 균형잡힌 조화를 이룬 교육이야말로 우리가 앓게 될지 모르는 ‘위장병(?)’에 대한 최선의 예방책이 아닌가 싶다. “잘못된 교육은 대학살처럼 갑작스레 덮쳐오진 않는다. 하지만 긴 안목으로 볼때 대학살보다 훨씬 치명적이다”라고 설파한 미국의 대문호 마크 트웨인의 경고를 되새겨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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