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과학기술분야에서 걱정되는 증세는 우선 ‘편집증’인 듯 하다. 산업체, 학계, 출연연, 정부가 모두 한 덩어리가 되어서 산업화 및 실용화 연구개발에만 매달리고 있다. 연구라는 것이 편집성향이 좀 있는 것은 좋을 수도 있고, 이 때문에 몇몇 산업기술 분야에서는 세계적인 수준의 기술을 보유하고 성공을 거두기도 한다.
그러나 조금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들이 모두 원천기술을 개선한 틈새기술이라는데 이러고도 기술이 견인차가 되어 2만불 시대가 도래 할 수 있을까 싶다.
또 다른 증세는 ‘과대망상증’이다. 앞의 증세와 관련이 있는데, 실용화를 한답시고 자기 전문분야는 제쳐 놓고 이런 저런 연관 분야를 기웃거리다 보니 ‘오리’연구원이 되는 것이다. ‘오리’는 날줄도 알고 물에서도 땅에서도 잘 논다. 그야말로 못하는 것이 없으나, 그렇다고 제대로 하는 것도 없다.
세계적인 기술패권주의 시대에 ‘오리’연구원이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마지막으로 ‘피로증후군’이다. 산업화 가능성이 높다는 것 한번 해보겠다고 남들 해놓은 거 확인하다가 수 3년을 보내고 나니 외국에서 제품이 되어 나온다. 이렇게 하다 보니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고, 스트레스도 쌓이고, 양으로 보면 해낸 일이 장난이 아닌데 돈을 많이 벌지도 못했고, 그렇다고 누가 알아주지도 않고, 자꾸 피곤해지기만 한다.
이젠 남들이 우릴 살린다고 나서기 전에 우리가 피로감을 떨쳐 버리고 먼저 나서자. 어쩔 수 없는 과학적 필연들과 기술 산업화에 대한 부담이 엉뚱한 결과와 무자비한 평가로 우릴 괴롭히지만 우리가 아니면 누가 에너지와 환경, 식량 그리고 저개발로 인한 빈곤과 같은 인류공통의 문제들에 해답을 줄 수 있겠는가?
둘째, 대학, 연구소, 산업계, 정부가 ‘과대망상’을 버리고 자기 할일을 먼저 하자. 예를 들면, 대학은 이공계 인재양성, 연구소는 대규모 원천기술, 기업과 정부는 성장 동력 기술의 개발 및 적용을 통해 먼저 기반을 다진 후에 서로의 영역을 이해하고, 상호협력을 도모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우리 정부는 과학기술자들이 기술의 산업적 가치에 대한 ‘편집증’을 털어 버리고 일할 수 있도록 사람 중심의 연구개발 풍토를 조성하여야 할 것이다. 우선 돈 되는 기술에 천착하다보니 그랬겠지만 우리는 자동차, 고속철도, 이동통신 같은 최종 결과물에 초점을 맞추어 기술개발을 하는 경향이 농후하다. 여기서 좀 팔리는 물건을 개발하면 당연한 일이고, 그렇지 않으면 쓸모없는 사람이 되는데 누가 과학기술자를 하려 하겠는가?
나노(N), 바이오(B), 정보기술(I) 등 차세대 원천기술은 최종 결과물이 특정되지 않은 것이 특징이라 할 수 있다. 향후에는 이들을 습득한 창의력 있고 우수한 과학기술 인재와 이들이 창출하는 NBI를 포함하는 혁신적 원천기술들만이 우리경제의 돌파구를 열어 줄 수 있을 것이다.
이공계 살리기는 과학기술자들의 자중자애(自重自愛)와 우리정부의 과학기술 인재를 중심(以人爲本)으로 하는 과학기술 정책의 추진에 달려 있다고 할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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