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험실과 연구실에서 젊음을 바치며 얻은 연구결과물을 읽을 때 가슴이 벅차올랐고 장래의 연구계획서를 읽으면서 우리의 밝은 앞날을 내다볼 수 있었다. 특히 지원자들의 토플, 토익 등을 확인할 때는 그 점수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20년 전 필자의 경험을 돌이켜 볼 때 그것은 놀라운 성취였다. 정말이지 그들이 그 동안 쏟아 왔을 학문적 열정을 생각할 때 모두 지원대상에 포함시키고 싶은 마음이었다.
해마다 이맘 때 쯤 30세 전후의 젊은이들이 국내를 떠나 해외유학길에 오른다. 국내와 달리 외국대학은 대부분 8월말 쯤 새 학기가 시작되기 때문에 이 때를 맞춰 미리 출국하게 된다. 이제 청운의 꿈을 안고 떠나는 이공계엘리트들을 위하여 학문의 선배로서 도와줄 수 있는 길이 무엇인지 생각해 본다.
우선 정책당국자들은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장학금 등 이른바 사탕발림으로는 현재의 위기를 넘길 수 없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무엇보다 이공계 출신자의 사회적 지위 확보가 우선돼야 한다. 우리 사회는 기술인이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 보니 기술인의 자부심도 크지 않다. 국가 차원에서 기술직에 대한 획기적인 우대정책을 펴야 한다. 군대 면제, 등록금혜택 등 실질적인 혜택이 있어야 한다. 70년대까지는 과학자의 보수는 자긍심을 느낄 정도로 파격적이었다.
기업과 이공계 대학 간 협력을 활성화해야 한다. 이공계 인력을 재교육하는 비용을 선투자 식으로 대학에 투자하는 게 바람직하다. 고급 과학기술 인력을 육성하는 게 결과적으로 회사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깨닫고 이공계 지원프로그램을 활성화해야 한다. 삼성그룹의 인사담당자는 최근 한 세미나에서 매년 6000여명의 공대출신을 신규 채용해 재교육시키는 데만 연 평균800억원을 쓴다고 말했다. 한 사람당 연간 1600만원의 재교육 비용을 쓰는 셈이다. 기술 강국인 독일도 1990년대 초 우리나라와 같은 이공계 위기론이 나왔다.
그러나 독일 대기업들은 이공계 지원에 적극 나섰다. 독일의 자동차 회사인 BMW도 대학교와 연계해 다양한 이공계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고교 졸업생을 대상으로 1년 6개월간 회사에서 실무교육을 하는 것으로 그 내용이 짜여 있다.
공부 잘하면 법대나 의대를 가지 왜 공대를 가느냐는 이야기는 전부터 있었다. 힘세고 돈 버는 곳은 법조, 의료계이기 때문이다. 옛날부터 내려온 사농공상 사상이 아직도 남아 있는데 이제는 국민의 인식도 바뀌어야 한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최근 매출액 기준 국내 50대 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CEO와 임원현황을 보면 이공계출신이 가장 많다. CEO는 44.%가, 임원급은 51.0%가 이공계 출신이었다. 사실 이공계출신들은 의사만을 기준으로 해 경제적 피해를, 변호사만을 기준으로 사회적 피해를 얘기하고 있으나 이제 상층부에서는 서서히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지금 우리가 그럭저럭 먹고 사는 것은 이삼십년 전 순수했던 이공계엘리트들이 과학기술계에서 피땀 흘리며 그 기초를 다진 덕분임을 알아야 한다. 이공계 위기가 국가경쟁력 저하로 이어질 것이란 우려도 많다. 지금보다 내 자식들이 살아야할 앞날을 생각하면 출구 없는 위기의 이공계 논쟁을 이쯤에서 정리하고 함께 실천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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