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순택 논설위원 |
그들은 묻는다. “행정수도가 오긴 오는 겁니까?" 그럴 법도 하다. 야당, 중앙언론, 수도권 자치단체 그리고 일부 사회 원로층의 거센 반발을 보면 될성부르지 싶지가 않다. 정권이 바뀌면 그 자리에서 없던 일이 될 지도 모른다. 나는 이렇게 대답하곤 한다. “와야 합니다. ‘지방의 반란'이 시작됐거든요."
반란은 과거와 같은 폭동이나 민란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정교한 논리와 치밀한 전략으로 중앙의 논리-서울의 논리를 이기는 것이다. 멀리 갈 것도 없다. 행정수도가 왜 필요한가하는 본질이 반란 그 자체다. 국토균형발전과 지방분권이기 때문이다.
찬반 논란이 있기 전까지 수도권의 과밀 현상에 대한 특단의 조치가 있어야 한다는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돼 있었다. 지금의 논란에는 찬반의 첨예한 대립만 있을 뿐 정작 중요한 본질은 거론조차 안되고 있다. 정부와 야당의 정략적 대결, 수도권과 충청권의 지역 이기주의로 몰아가는 것은 정말 유감이다.
조선시대와 일제를 거쳐 해방 이후 지금까지 서울은 한국의 중심이었다. 전제군주시대에 이어 해방 후 중앙집권체제의 정부가 서울을 ‘특별시'로 지정해 집중 개발한 것까지는 이해한다. 그러나 ‘서울공화국'을 만드는 사이 지방을 몰락위기로 몰아넣은 실책은 반성해야 한다. 서울사람들이 선민의식과 우월주의에 젖어들고 지방은 서울의 지배를 숙명처럼 받아들이게 된 것이 오늘의 혼란을 낳은 단초다.
지역에 와본 적도 없는 서울과 수도권 심사위원이 지역개발 예산이나 지방 문화예술 지원방안을 심의 결정할 만큼 지방은 철저히 중앙에 의해 재단되어 왔다. 지방의 의식과 삶의 양식마저 중앙에 의해 철저히 예속되어 온 것이다. 서울과 지방이 격차는 단순히 경제력이나 소득 수준으로만 말할 게 아니다.
전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TV진행자가 서울 날씨가 좋으면 마치 당연한 것처럼 “국민 여러분, 오늘 좋은 하루 보내셨습니까?"라고 말한다. 지방에서는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데도 누구도 이를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 만큼 ‘서울중심주의'는 일상적 삶에 뿌리박혀 있다. 한마디로 지방에 살면 국민 축에도 못드는 것이 오늘날 ‘지방소외'의 현주소다.
역대 정부는 서울의 과밀화, 나아가 수도권의 과대팽창을 시급히 해결해야 할 정책 과제로 삼았다. ‘수도권정비 계획법' 등을 통해 공장 총량제, 대학 신설 억제 등 수도권 집중을 막기 위한 각종 규제책을 폈다. 한편으로는 비수도권 지역으로의 기업 및 대학 이전을 유도하기 위해 조세 감면 등의 유인책도 병행했다. 이같은 정책이 과연 효과를 가져왔는가. 억제는커녕 팽창의 도도한 흐름을 도저히 감당하기 힘든 지경에 이르렀을 뿐이다.
물론 정부 주도의 사회 경제적 발전이 느슨해진 것은 사실이다. 그래도 여전히 상당한 자원과 기회의 배분권을 가진 행정기관과 공공기관을 수도권에 그대로 둔 채, 시행한 정책들이 과연 얼마나 설득력을 가질 수 있었겠는가. 수도권에 집중된 자원과 기회를 비수도권으로 분산하는 특단의 사전 조치 없이 지방분권은 오히려 비수도권을 궁지에 몰아넣는 결과를 가져올 가능성이 크다. 이런 의미에서 중앙 행정기관을 비수도권으로 옮기는 행정수도 이전과 공공기관을 재배치하는 공공기관 이전은 수도권 집중과 지방의 공동화를 막을 수 있는 마지막 ‘정책 카드’다.
수도 이전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 다른 지방들도 국지적 이해관계를 떠나야 한다. 그리고 비수도권이 활력과 자존심을 회복하도록 지방의 반란에 동참하기를 염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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