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던 어느 날인가 효진이가 며칠을 학교에 나오지 못했다. 환절기라서 다른 친구들도 열감기로 결석을 많이 하는 터라 효진이 엄마와 나는 효진이도 감기로 인한 고열로 앓아 누웠다는 생각에 감기 걱정만을 했다. 그렇게 며칠이 흘러 감기치고는 다른 아이들보다 유난히 오래 간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효진이 어머니로부터 효진이가 백혈병 판정을 받았다는 전화를 받았다.
‘백혈병이라니…. 그렇게 밝은 아이가 왜 백혈병에? 무언가 잘못되었겠지.’
아무래도 믿기지 않았다. 기운이 없고 감기를 자주 앓기는 하였지만 그래도 백혈병은 날벼락이 아닐 수 없었다.
계속 결석을 하는 바람에 효진이의 책상은 주인을 잃고 먼지만 쌓여가는 것 같아 우리는 매일 매일 애꿎은 책상만 박박 닦았다. 그러면 효진이의 병이 깨끗하게 씻겨 내려갈 것 같아서 하루도 거르지 않았다.
지난 수요일에는 서울 여의도 성모병원으로 효진이를 만나러 갔다. 효진이가 학교에 나오지 않은지 한 달 만이다. 그 한 달 동안 효진이는 힘든 항암 치료를 받느라 곱던 머리카락이 다 빠지고 살도 쏙 빠져서 뼈만 남아 있었다. 길지 않은 한 달이 효진이에게는 얼마나 괴롭고 기나긴 나날이었을까?
애써 밝게 웃으며 ‘안녕’하고 말하는 내 앞에서 그 아이는 무표정한 얼굴로 나를 빤히 바라만 본다. 지난 봄 내내, 까르르까르르 웃던 효진이의 모습은 간데 없고, 아픔에 지쳐 모든 것을 체념한 듯한 아이를 보며 어찌나 마음이 아프던지…. 머리카락이 없는 모습을 아무에게도 보여주기 싫어서 지금까지 무균실 밖으로는 단 한 발자국도 나온 적이 없다는 아이가, 그래도 담임 선생님이 대전에서 찾아왔다는 말에 유리창 너머로 얼굴이라도 보여주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하나하나 놓칠 수 없고 소중한 내 아이들인데. 그 중 하나를 저렇게 힘든 사지로 보내다니, 어찌하면 좋을까. 문 밖에 서서 효진이 엄마를 붙잡고 한참을 그렇게 울었다. 행여 아이가 보고 마음 아파하고 더 힘들어할까 봐, 효진이 엄마와 나는 울음소리조차 크게 내지 못했다.
하루 하루가 1년처럼 길게 느껴질 아픈 효진이를 뒤로 하고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한참을 멍하니 있었다. 우리 반 아이가 죽음과 맞서 싸우며 살아가고 있는데 차창 밖 세상은 왜 이리도 고요하고 청명하기만 한 것일까? 무겁기만 한 발걸음을 옮기며 나는 마음 속으로 기도했다.
우리 효진이가 하루 빨리 친구들 곁으로 돌아와서 그 예쁜 미소를 다시 볼 수 있게 해 달라고. 주인을 기다리는 효진이의 책상에 먼지가 앉기 전에 얼른 건강해져 돌아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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