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할리우드와는 달리 영화의 미학을 기꺼이 포기하고, 논리와 전개에 있어서는 빵점인 이 영화에 실망할 수도 있다. 할리우드 영화라는 것이 관객이 영화를 보고 나서 논리를 이끌어내는 것이 아니라 영화가 전개하는 논리에 푸욱 빠져 있다가 그 영화의 배우가 누구인지, 의상이 어땠는지만 물어보도록 되어 있는데 반해 쉼없이 의문을 던지고 생각케 하는 이 영화를 보면 머리가 아플 수도 있다.
무어는 화씨911도가 ‘자유가 불타는 온도'라고 했다. 미국이 이라크를 자유의 적이라면서 침공하고서는 오히려 그 어느 누구 못지 않은 온갖 야만적인 폭거를 자행하는 것을 보면서 분노했던 사람들은 이 말을 이해할 법하다. 부시 가문과 빈 라덴 가문의 긴밀한 유대, 우리나라 자유당 때나 있었을 법한 부정선거를 자행하고서도 이를 바로잡지 못하는 미국 의회(부시의 부정 선거에 대한 이의 제기는 전부 기각된다.
어쩐 일인지 민주당 소속 상원의원들조차 1명도 이의 제기안에 서명하지 않는다), 미 국민의 눈과 귀를 멀게 하기 위해 공화당 정부가 취하는 온갖 비열한 술수들, 명분 없는 전쟁에 내몰려 죽거나 다친 젊은이들, 졸지에 집과 가족을 잃고 분노에 차 있는 이라크 민간인들. 이 장면들을 보면서 미국 정치인들이 기회 있을 때마다 떠벌리는 자유라든지 평화라는 게 얼마나 공허하고 편의적인 이야기인지 와 닿게 되면서 아울러 마치 화씨 911도의 불구덩이 속에 들어앉아 있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알게 될 것이다.
뉴스 화면이나 극영화, 그리고 무어 자신이 직접 촬영한 것들을 닥치는 대로 조합하고, 어떤 일에 책임이 있다고 생각되는 사람 하나를 골라 스토커처럼 집요하게 쫓아다니며 황당하기 짝이 없는 질문을 퍼부어대는 마이클 무어. 그 특유의 과장과 풍자, 조롱에 의해 변형되어 지극히 희극적인 모습으로 바뀌어지는 미국의 정치 현실을 보면서 다분히 흥미진진한 것으로만 받아들이면 되는 것인가? 문제는 이 영화의 장면 하나 하나가 우리나라 현실과 결코 동떨어진 것이 아니란 것이다.
이 영화가 강조하는 것처럼 이라크가 미국에게 침략당하고 그 국민이 이유를 모른 채 죽어나가는 것이 결국은 힘없는 나라가 감수해야 할 당연한 운명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것을 이해하게 된다면 우리나라 또한 예외가 아니라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6.25 한국전쟁은 2차 대전이 끝난 후 미국이 자국에 쌓인 무기의 재고를 소비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했던 전쟁이었고, 그리고 미국 항공모함에서 이라크에 쏘아대었던 미사일 한 방이 몇 억 원에서 몇 십억 원에 이르고, 이러한 무기를 미국 정부가 사서 세계 문명의 발상지에 쏟아부음으로써 미국의 군사 산업을 되살리는 젖줄을 삼는다는 것은 다 알고 있지 않은가?
그들이 걱정하는 것은 정권을 어떻게 빼앗을 수 있을까 하는 문제이지 결코 나라가 강성해야 한다든지 경제를 되살려야 한다든지 하는 문제가 아니다. 전쟁이 일어나거나 경제가 어려워지면 괴로운 것은 서민들이지 기득권층이 아니다. 가진 자들은 IMF 때 더 잘 살게 되지 않았던가. 그런데 여전히 서민들은 잘도 기만과 공격에 속아넘어간다. 내 손으로 뽑은 정부를 무너뜨리려는 사람들의 욕지거리에 귀가 즐겁고, 그에 부화뇌동하여 자신을 내동댕이치면서도 그것이 무슨 뜻인지를 전혀 알아채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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