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북경에 온 첫날부터 TV 주요 뉴스중 하나는 이러한 스포츠 소식 이외에 불량식품과 이로 인한 식중독 사건이었다. 우리나라도 때 되면 빠지지 않는 뉴스가 바로 여름철 식중독 뉴스가 아닌가. 유명 빙과류나 유명 백화점에서 파는 음식에 대장균이 기준치의 몇 배가 검출되었다는 등의 뉴스 말이다. 학교와 같은 대형 급식시설에서 식중독으로 인해 다수의 학생이 입원 치료를 받고 있다는 뉴스도 여름철이면 빠지지 않는다.
북경의 TV에서 나오는 불량식품이나 식중독 이야기도 처음에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시내 노점에서 파는 가짜 생수, 비위생적인 방법으로 조리한 식품, 그리고 그것을 먹고 탈이 난 사람들 이야기 등등. 그런데 중국이란 사회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은 짐작하겠지만, 중국은 사회적 해결방안이 준비되었을 경우에만 사고나 사건을 공개하지 여름이 되었으니 한 건 하자는 식으로 기사가 나오지는 않는다.
다시 말하면 거의 매일같이 등장하는 불량식품이나 식중독 문제는 위생문제를 넘는 그 이상의 사회적 목적을 갖고 있다. 뉴스 화면에서 식중독으로 병원에 입원한 사람은 학생도 일반 북경시민도 아니었다. 중국어로는 ‘농민공’이라고 불리는 가난한 농촌에서 살다가 도시로 나가 막노동이라고 하면서 돈을 벌어 보려는 그런 사람들이었다.
도시의 건설현장 등에서 육체노동을 하면서 한 달에 20만원~30만원 정도 벌고, 한 끼 식사도 우리 돈 150원 정도에서 해결해야 하는 궁핍한 농민공이 값싼 재료로 만든 불량음식을 먹고 병원에 누워있는 것은 위생문제가 아니라 사회적인 문제이고 정치문제라는 것이 중국정부의 시각인 것이다.
한국인중 최근 북경이나 상해와 같은 중국의 대도시를 다녀본 사람은 중국의 발전속도에 하나 같이 놀라움을 표시한다. 하늘 높이 솟은 고층건물과 서울에서도 보기 힘든 고급차가 시내를 질주한다. 중국의 대도시는 이제 스스로 발전할 수 있는 궤도에 올라왔으며, 국제적인 위상을 놓고 서로 경쟁하는 환경이 되었다.
그런데 중국 지도부가 생각할 때 문제는 이들 도시가 아니라 전체 인구의 약 70%(9억 명)가 살고 있는 농촌의 경제수준을 향상시키는 것이다. 농촌경제를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농업생산성을 올리고 농촌지역에 소도시를 건설하여 공업기반을 갖추도록 해야 하겠지만, 이는 장기적인 해결책이고 단기적으로는 어떤 방법이든 농민의 ‘현금’ 소득을 올려야만 한다. 그런데 현금 소득을 올리는 가장 좋은 방법은 역시 도시에 나가서 돈을 벌어오는 것이다.
중국은 90년대 말까지 연해지역의 도시만으로 높은 경제성장을 시현할 수 있었지만, 이제 도시지역만으로는 과거와 같은 발전속도를 유지하기 어렵게 되었고, 빈부격차, 도농격차 등 사회적 갈등 요인만 증폭될 가능성을 갖게 되었다. 따라서 농촌의 발전은 경제적으로는 물론 정치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문제일 수밖에 없다.
오늘 아침 북경의 한 신문에서는 농민공 자녀에게 학비를 면제해 준다는 기사가 나왔다. 농민공은 북경시민이 아닌 외지인이라서 의료보험이나 자녀학비 등 기본적인 사회보장 혜택을 받지 못하였는데 이제 이들에게 북경에서 떳떳하게 살 권리는 준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역시 ‘평등한 교육정책’의 결과가 아니라 ‘농촌 정책’의 시각에서 보아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중국에 관심을 갖고, 중국과 관련된 사업을 구상하고 있다. 중국에서 나타난 어떤 현상에 대해 그 조직화된 이면을 분석할 수 있으면 현대 중국을 충분히 이해한다고 말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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