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자 부채는 에어컨에게 말했습니다. “그럼. 에어컨에서 나오는 더운 바람을 식히려면 내가 필요하지.” 그러자 에어컨은 발끈하여 부채를 향해 말했습니다.
“무슨 소리야! 내가 얼마나 시원한 바람을 내 놓는 줄 알아?”
그러자 부채는 에어컨을 쳐다보지도 않고 자신의 길을 가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앞으로는 시원한 바람을 내 보내고 있지만 뒤로는 얼마나 뜨거운 열기를 품어내고 있는데….”
누군가 에어컨에 대해서 정의를 한다면 어려움에 부딪히게 될 것입니다. 에어컨은 시원한 바람을 내 뿜는 기계인가? 아니면 더운 열기를 뿜어대는 기계인가? 실외기를 통해서 뿜어대는 열기를 식히기에는 에어컨이 내 놓는 시원한 바람으로는 어림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에어컨은 시원한 바람을 내 뿜는 기계라고 정의하기에는 뭔가 부족함을 느끼게 되지 않을까요?
사람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에어컨을 켜면 그 안에 있는 사람들,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시원함을 느끼지만 밖에 있는 사람들은 더위를 느끼게 됩니다. 세상을 위해 봉사한다고 하면서 몇몇에게만 혜택이 돌아가게 하고, 많은 사람들에게는 불편함을 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더 나아가 남에게 드러나는 모습은 멋져 보이지만, 그래서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지만 그 이면에 감추어진 모습은 그리 아름답지 않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신의 이익에 부딪치게 되면 자신의 본심을 들어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부채를 사용하면 조금은 귀찮지만 나도 시원해지고, 내 옆에 있는 사람들도 시원해집니다. 드러나지는 않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작은 손길로 도움이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자신을 내어 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투박하지만 그래서 언제나 사람들에게는 있는 듯 없는 듯한 존재이지만 겉과 속이 같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두 가지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면 저는 부채와 같은 삶의 모습을 선택하겠습니다. 하지만 제 마음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내가 이런 사람이라는 것을 남에게 보여 주고 싶고, 내가 이것을 했다는 것을 알리고 싶고, 내가 그래도 너보다는 조금 났다는 마음을 드러내고 싶은 마음”들이 요동을 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부끄러운 모습들, 실수들, 욕심들”이 교묘하게 겸손이라는 포장을 덮어쓰고 그 뒤에 자리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릇된 욕망과 선한 의지가 싸우면 대부분은 욕망이 이깁니다. 그래서 수도자들이 사막이나 광야로 나아가 홀로 머물며, 자신의 육체의 욕망과 싸워 이겨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욕망을 따르고 있는 나는 오늘도 마음은 있지만 실천으로 옮기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어디 무인도에 가서 혼자 살 수도 없는 노릇이고….
이런 모습이 나의 모습이라는 것을 생각하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와 함께 해주는 사람들에게 더욱 감사함을 느끼게 됩니다. 참된 삶의 가치가 무엇인지를 알고, 그렇게 남을 생각해 주는 마음들을 조금씩 키워 나간다면 어느 순간 나도 부채와 같은 삶을 살아가고 있지 않을까요? 무인도에 가서 혼자 살지 않아도 될 정도로….
오늘밤은 부채를 들고 밖에 나가 더위를 식히며 어떤 것 부터 실천해야 할지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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