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세상사도 계절을 닮았으면 얼마나 좋을까? 세상 더위가 말씀이 아니다. 지금 나라 안이 들끓고 있다. 냄비 속처럼 들끓고 있는 것이 어디 한 두 개인가? 조금 전만 해도 이라크에 가서 아까운 목숨을 버린 한 젊은이 문제로 들끓었다. 수도이전문제도 여전히 끓고 있다.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의 누드 패러디 파문, 의문사위와 국방부의 사실 폭로전, 국가기관 10곳 해킹사건 등 어느 곳 하나 들끓지 않는 곳이 없다.
거기에 친일반민족행위자의 범위를 확대하는,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특별법 개정안’이 국회에 제출되어 논란이 일고 있다. 여당은 ‘과거사 바로 세우기 차원’이라고 하고 야당은 ‘야당탄압 및 비판언론 재갈 물리기’라고 한다. 야당의 반발은 박정희 전대통령과 조선, 동아일보 사주를 특정대상으로 겨냥하는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정치적 의도로 보는 것이다.
여당이 주장하듯 ‘민족정기와 세운다’는 것이라면 야당의 우려는 속 좁은 편견이다. 진정으로 민족정기, 과거사를 바로 세우려는 충심에서 나온 것이라면 크게 반기고 격려할 일이다. 그러나 시작하기 앞서 몇 가지 생각할 것이 있다.
우선 시작하는 명분이 뚜렷해야 한다. 오랜 병을 이제야 손대는 절박함과 당위성, 병의 성격과 완치의 확실성, 회복 이후의 건강상태에 대한 종합적인 처방전을 펼쳐 보이고 국민적 신뢰와 동의를 얻어야 한다.
법을 손대는 사람들은 일제강점 아래 산 경험이 없으므로 그때 그 사람들에 대한 이해도 깊어야 한다. 이론적인 접근만으로는 안 된다. 과거사를 바로 세우는 일은 미래를 바로 세우는 일과 같다. 미래를 바로 세우는 일은 또한 민족의 영원한 번영을 이끄는 일이다.
만에 하나라도 결과를 자기 자신이나 자기가 속한 집단의 일시적 이익으로 둔갑시켜서는 안 된다. 세월에 오래 견딜 수 있어야 하고 시간이 갈수록 빛을 낼 수 있어야 한다. 이들 ‘세우는 일’을 기둥으로 비유한다면 기둥을 박을 땅이 필요하다. 무엇이 그 땅이 되는가? 두말할 필요 없이 우리 민족, 우리 사람이다.
그러니 ‘세우기’의 최종목적은 결국 ‘사람을 바로 세우겠다’는 것이다. 어떻게 사람을 바로 세울 것인가? 바르게 산다는 일이 무엇인지, 특히 한 개인이 국가의 위기를 맞았을 때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 또는 개인이 국가의 틀 안에서 미래를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함께 엮어 주어야 한다. 긴 호흡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진정으로 역사를 바로 세우려면 옛 신화 속 영웅들처럼 할 일이다. 옛 영웅으로서의 고뇌와 절제와 힘과 용기를 보여 주어야 한다. 그들은 개인이나 집단의 이해관계가 아니라 민족에게 영구한 정신적, 물질적 부를 가지고 온 사람들이다. 과거에 얽매인 쇠사슬을 끊어내고 새로운 세계, 변모와 유동성을 이끄는 존재, 그 힘든 짐의 무게를 감당하고 그 뜻에 자신조차 희생시킬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격정과 적대감, 불감증과 냉소, 모멸감, 보편적인 질서로부터의 소외감. 이것이야말로 현재 우리 사회가 지금 앓고 있는 병이다. 잘못 손을 대, 병만 더 깊어진다면 이 사회는 더 분열될 것이고 분열된 사회는 결국 누군가의 착취 대상으로 연명하게 될 것이다. 여름 한복판, 이 더위 보다 세상 더위가 더 찜통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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