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우주경쟁은 이미 1950년대부터 시작되어 1957년 10월 구소련은 인류최초의 인공위성인 스프트니크호를 우주공간에 진입시켰다. 이어서 1961년 4월에는 유리가가린이 보스토크호를 이용해 인류최초의 유인우주비행에 성공하였다.
소련에 선수를 빼앗긴 미국은 1961년 아폴로계획을 발표하고, 1969년 닐 암스트롱이 인류최초로 달표면에 착륙하게 된다. 금년 2월에는 미국의 부시대통령이 과거 케네디대통령의 아폴로계획을 연상시키는 우주개발계획을 발표하여, 2015년이후 유인 달탐사를 재개하고, 향후 30년안에 화성에 우주인을 보내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우리와 가까운 일본과 중국 역시 예외는 아니어서, 일본은 1970년 인공위성 ‘오오스미 1호’를 자력 발사하였으며, 지금까지 러시아, 미국에 이어 세계3번째로 많은 수의 인공위성을 발사한 바 있다. 뿐만 아니라 일본은 1990년에 일본 최초의 우주비행사 아키야마를 러시아 소유즈호를 이용해 탄생시킨 바 있으며, 지금까지 러시아와 미국의 우주왕복선을 이용해 7명의 우주비행사를 배출한 바 있다.
중국의 경우에도 1956년부터 우주개발에 착수하여 1960년 첫 번째 로켓발사, 1970년 인공위성 동방홍 1호를 쏘아 올렸으며, 2003년 10월에는 유인우주선 ‘선조우 5호’를 성공적으로 발사하고 지구에 무사히 귀환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이로써 중국은 최초의 중국인 우주비행사 ‘양리웨이’를 탄생시켰다.
우주개발은 최첨단 과학기술의 결정체이며 경우에 따라서는 희생이 동반하기도 한다. 일례로 1986년에는 미국 NASA의 챌린저호 공중폭발로 7명의 우주비행사가, 2003년에는 콜롬비아호의 참사로 여성우주인 2명을 포함한 6명의 우주비행사가 목숨을 잃기도 하였다.
이러한 시련에도 불구하고 우주개발을 위한 인류의 도전과 모험에는 중단이 있을 수 없다.
우리나라도 머지않은 장래에 한국인 최초의 우주비행사가 탄생할 전망이다. 현재 과기부가 러시아와 국제협력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는 우주인 양성 계획에 따르면, 전 국민을 대상으로 선발절차에 들어가 가까운 장래에 2~3명의 우주인 후보를 선발하여, 러시아의 가가린 우주센터에서 우주적응 훈련을 받고 2010년 이내에 러시아 소유즈 우주선을 이용해 국제우주정거장에 탑승하여 각종 우주과학실험을 수행하게 된다고 한다.
우주개발은 청소년들에게 과학과 우주에 대한 꿈과 희망을 심어주는 미래지향적인 분야로써 단순한 경제적 가치이상의 의미를 지니는 분야이다. 21세기 세계를 제패하는 국가대열에 동참하기 위해서는 우리도 우주개발을 적극적으로 추진하여야 한다. 과학기술의 발전은 그리 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수많은 도전과 실패를 반복하고서야 비로소 성공할 수 있는 것이며, 어려움을 회피하지 않는 도전정신이야말로 선진국으로 나아가는 원동력이다. 곧 탄생하게 될 한국인 최초의 우주비행사는 우리나라가 과학선진국으로 진입하는 상징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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