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칼럼]아름다운 공동체

  • 오피니언
  • 독자 칼럼

[종교칼럼]아름다운 공동체

  • 승인 2004-07-17 00:00
  • 장곡스님(계룡산 갑사 주지)장곡스님(계룡산 갑사 주지)
이른 새벽 여명이 틀 무렵 도량석(절을 정화하는 염불) 목탁소리가 계룡산 갑사의 적막을 깨운다. 목탁 소리와 함께 천수경 염불소리가 들려오면, 밤새 선방에서 참선수도하였거나 고요한 사찰에서 잠이 들었던 대중이라도 맑고 깨끗한 새벽의 기운을 안고 일어난다.

장삼을 걸친 스님들과 신도들이 조용히 법당에 모여들면 갑사 범종루의 불전사물(범종, 법고, 목어, 운판)이 울리기 시작한다.

도량석이 산사를 깨우더니 웅장한 범종소리는 온 산을 깨운다. 산짐승과 새들도 눈을 비비고 곤충들도 기지개를 켠다. 산바람도 활기차게 불고 계곡의 물도 소리를 내며 흐른다.
태양이 솟아오르고 날이 밝아지면서 절 집은 분주해지기 시작한다.

하루의 일과를 맞기 위해 각자의 소임대로 움직인다. 어느 하나 소홀히 할 수 없다. 우주 공동체의 삶이 이어지는 것이다.

계룡산 갑사의 식구들은 다양하다. 공부하는 스님들, 절살림을 하는 종무소·공양간 식구, 멍멍이, 고양이, 이름 모를 새들, 각종 수목들, 산바람, 계곡물 등이 이름다운 공동체를 구성하고 있다.

밖에서 볼 때 산문 안에서의 생활이 마냥 한가롭게 보일지 몰라도 분주하기는 마찬가지다. 매일 수십 명이나 되는 절식구들의 하루 세 끼 식사준비는 물론 법회와 큰 행사가 있을 때는 천명이 넘는 공양 준비로 무척 바쁘다. 더욱이 갑사는 템플스테이 지정사찰로 선정되어 외국인들을 비롯해 다른 종교의 신도들도 많이 오고 있다.

이제 계룡산 갑사는 예전의 갑사가 아니다. 인근 사하촌이나 지역 신도들만 오는 사찰이 아니라 지구촌의 갑사로 알려져 있다.

현대문명인 인터넷의 갑사 홈페이지를 통해 외국인들이 템플스테이를 신청하고 감사의 뜻을 이메일로 보내오고 있다. 지구촌은 한 식구들이 더불어 같이 살아가야 할 공동체이다. 세상에 있는 것들은 모두가 아름다운 것이다. 산사에서 자연을 가만히 보면 모든 존재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된다.

그런데 지금 국내외에서 벌어지고 있는 지구촌 식구들 간의 분쟁은 공동체의식과는 거리가 멀다. 나와 우리가족, 내 민족, 내 종교 등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뜻이 안 맞는 상대를 마구 해치는 일이 다반사로 벌어지고 있다.

자신들과 이념이 안 맞으면 무조건 원수로 보고 공격한다. 언제부터인가 지구촌은 정의도 도덕도 없다. 힘을 내세워 무자비하게 상대방을 파괴한다. ‘남의 불행이 나의 행복’이라는 식의 잔인한 사고가 만연하고 있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이 괴로움에서 벗어나 즐거움을 얻도록 도와주는 게 진정한 종교의 역할이다. 그런데 자신부터 행복해지려고 남을 해친다면 지옥이나 다름없다.

아름다운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문화와 이념이 다른 상대방을 인정하고 위해 주자. 작은 미물 하나라도 아름다운 것으로 존중하고 살려주자. 갑사와 계룡산의 하루는 석양이 저물면서 마무리된다. 저녁 예불과 범종소리는 오늘 하루가 지나감을 알려준다.

산사는 갖가지 분주함을 놓고 또다시 적막 속으로 들어간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가을단풍 새 명소된 대전 장태산휴양림…인근 정신요양시설 응급실 '불안불안'
  2. [사설] 의료계 '정원 조정 방안', 검토할 만하다
  3. [사설] 충남공무원노조가 긍정 평가한 충남도의회
  4. 대전사랑메세나에서 카페소소한과 함께 발달장애인들에게 휘낭시에 선물
  5. 대전 유성 둔곡 A4블록 공공주택 연말 첫삽 뜨나
  1. 제90차 지역정책포럼 및 학술컨퍼런스 개최
  2. '한국탁구 국가대표 2024' 나만의 우표로 만나다
  3. 국방과학일류도시 대전 위한 교류장 열려
  4. 충남대병원 응급의학과 학술적 업적 수상 잇달아…이번엔 국제학자상
  5. 건양대병원, 시술과 수술을 한 곳에서 '새 수술센터 개소'

헤드라인 뉴스


아침밥 안 먹는 중·고생들… 대전 45% 달해 ‘전국 최다’

아침밥 안 먹는 중·고생들… 대전 45% 달해 ‘전국 최다’

대전지역 청소년들의 아침식사 결식률이 전국에서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적극적으로 대응해 학생들의 건강 증진이 절실한 상황이지만 대전교육청은 바른 식생활 교육을 축소한 것으로 나타나 대책 마련이 시급한 상황이다. 26일 교육부 2024 청소년건강행태조사 분석 결과에 따르면 전국적으로 학생들의 아침식사 결식률은 지난해보다 1.3%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해당 조사는 전국 800개 표본학교의 중·고등학생 약 6만 명을 대상으로 흡연, 음주, 식생활, 정신건강 등에 대해 자기기입식 온라인조사를 통해 진행됐다. 대전지역 학생들의 아침..

[기획] 대전, 트램부터 신교통수단까지… 도시균형발전 초석
[기획] 대전, 트램부터 신교통수단까지… 도시균형발전 초석

대전시가 충청권 메가시티 완성의 시작점인 광역교통망 구축에 힘을 쏟기 위해 총력을 다하고 있다. 도시철도 2호선 트램부터 신교통수단 시범사업 등을 추진하면서 도시균형발전 초석을 다지는 것을 넘어 충청 광역 교통망의 거점 도시가 되기 위한 준비에 나섰다. 28년 만에 도시철도 2호선 트램이 올해 연말 착공한다. 도시철도 2호선은 과거 1995년 계획을 시작으로 96년 건설교통부 기본계획 승인을 받으면서 추진 됐다. 이후 2012년 예비타당성 조사를 통과하면서 사업이 물꼬를 틀 것으로 기대됐지만 자기부상열차에서 트램으로 계획이 변경되면..

대전 유통업계, 크리스마스 대목 잡아라... 트리와 대대적 마케팅으로 분주
대전 유통업계, 크리스마스 대목 잡아라... 트리와 대대적 마케팅으로 분주

대전 유통업계가 다가오는 크리스마스를 겨냥한 크리스마스트리와 대대적인 마케팅으로 겨울철 대목을 노리고 있다. 우선 대전신세계 Art&Science는 본격적인 크리스마스 시즌을 앞두고 26일 백화점 1층 중앙보이드에서 크리스마스트리를 선보였다. 크리스마스 연출은 '조이 에브리웨어(Joy Everywhere)'를 테마로 조성했으며, 크리스마스트리 외에도 건물 외관 역시 크리스마스 조명과 미디어 파사드를 준비해 백화점을 찾은 고객이 크리스마스의 즐거움을 찾을 수 있도록 했다. 대전 신세계는 12월 24일까지 매일 선물이 쏟아지는 '어드벤..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12월부터 5인승 이상 자동차 소화기 설치 의무화 12월부터 5인승 이상 자동차 소화기 설치 의무화

  • 첫 눈 맞으며 출근 첫 눈 맞으며 출근

  • 가을의 끝자락 ‘낙엽쌓인 도심’ 가을의 끝자락 ‘낙엽쌓인 도심’

  • ‘우크라이나에 군사지원·전쟁개입 하지 말라’ ‘우크라이나에 군사지원·전쟁개입 하지 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