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삼을 걸친 스님들과 신도들이 조용히 법당에 모여들면 갑사 범종루의 불전사물(범종, 법고, 목어, 운판)이 울리기 시작한다.
도량석이 산사를 깨우더니 웅장한 범종소리는 온 산을 깨운다. 산짐승과 새들도 눈을 비비고 곤충들도 기지개를 켠다. 산바람도 활기차게 불고 계곡의 물도 소리를 내며 흐른다.
태양이 솟아오르고 날이 밝아지면서 절 집은 분주해지기 시작한다.
하루의 일과를 맞기 위해 각자의 소임대로 움직인다. 어느 하나 소홀히 할 수 없다. 우주 공동체의 삶이 이어지는 것이다.
계룡산 갑사의 식구들은 다양하다. 공부하는 스님들, 절살림을 하는 종무소·공양간 식구, 멍멍이, 고양이, 이름 모를 새들, 각종 수목들, 산바람, 계곡물 등이 이름다운 공동체를 구성하고 있다.
밖에서 볼 때 산문 안에서의 생활이 마냥 한가롭게 보일지 몰라도 분주하기는 마찬가지다. 매일 수십 명이나 되는 절식구들의 하루 세 끼 식사준비는 물론 법회와 큰 행사가 있을 때는 천명이 넘는 공양 준비로 무척 바쁘다. 더욱이 갑사는 템플스테이 지정사찰로 선정되어 외국인들을 비롯해 다른 종교의 신도들도 많이 오고 있다.
이제 계룡산 갑사는 예전의 갑사가 아니다. 인근 사하촌이나 지역 신도들만 오는 사찰이 아니라 지구촌의 갑사로 알려져 있다.
현대문명인 인터넷의 갑사 홈페이지를 통해 외국인들이 템플스테이를 신청하고 감사의 뜻을 이메일로 보내오고 있다. 지구촌은 한 식구들이 더불어 같이 살아가야 할 공동체이다. 세상에 있는 것들은 모두가 아름다운 것이다. 산사에서 자연을 가만히 보면 모든 존재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된다.
그런데 지금 국내외에서 벌어지고 있는 지구촌 식구들 간의 분쟁은 공동체의식과는 거리가 멀다. 나와 우리가족, 내 민족, 내 종교 등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뜻이 안 맞는 상대를 마구 해치는 일이 다반사로 벌어지고 있다.
자신들과 이념이 안 맞으면 무조건 원수로 보고 공격한다. 언제부터인가 지구촌은 정의도 도덕도 없다. 힘을 내세워 무자비하게 상대방을 파괴한다. ‘남의 불행이 나의 행복’이라는 식의 잔인한 사고가 만연하고 있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이 괴로움에서 벗어나 즐거움을 얻도록 도와주는 게 진정한 종교의 역할이다. 그런데 자신부터 행복해지려고 남을 해친다면 지옥이나 다름없다.
아름다운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문화와 이념이 다른 상대방을 인정하고 위해 주자. 작은 미물 하나라도 아름다운 것으로 존중하고 살려주자. 갑사와 계룡산의 하루는 석양이 저물면서 마무리된다. 저녁 예불과 범종소리는 오늘 하루가 지나감을 알려준다.
산사는 갖가지 분주함을 놓고 또다시 적막 속으로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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