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지로 사양하고 난 후 얼마 있다가 그 분을 면전에서 보게되었다. 또 다시 강아지 이야기를 꺼내길래 피해볼 양으로 그렇게 이쁘면 직접 기르시는 게 어떠냐고 했더니 이미 집에는 3마리나 기르고 있어 힘들다고 하였다.
사실 그 분이 집에서 개를 기르게 된 연유를 나는 안다. 개를 좋아하는 이유도 있겠지만 버려지는 개를 데려다가 씻어주고 아픈 데가 있으면 고쳐주어 기를 수 있는 집에 분양해주는 일종의 사회활동을 오래 전부터 해왔던 터였다.
그러면서 그 분은 이런 얘기를 들려주었다. 요즘 들어 버려지는 개들이 많은데 경제 사정이 나빠져서 버려지는 경우도 있지만 새끼였을 때는 귀엽다고 애지중지 하다가 크면서 귀여움이 없어졌다고 버려지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하였다.
내가 심리학자가 아닌 이상 귀엽게 생긴 것들을 선호하는 어떤 사회 현상이 존재하는지 그 여부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분명 내가 느끼는 바로는 이런 현상들이 다분히 지속되고 있으며 그 정도가 심해지고 있음에 틀림없다. TV 오락 프로그램에 나오는 출연진들을 보면 꽃미남 꽃미녀 일색이다.
그들을 환호하는 이유를 물어보면 오직 귀엽게 생겼거나 하는 행동이 귀엽다고 서슴없이 얘기한다. 험하게 생긴 것보다 귀엽고 예쁘게 생긴 것에 호감이 가는 것은 인지상정일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을 부추기고 몰아가는 풍조가 우리 사회 군데군데서 감지되고 있는 것이다.
남자, 여자, 어린이, 늙은이 그들 모두가 귀엽고 예쁜짓을 하며 살아가는 세상을 상상하면 실로 끔찍하다. 욕쟁이 할머니, 무서운 선생님, 말없으며 정이 깊은 아버지, 용기있는 청년들, 죽도록 가난해도 억척같이 살아보겠다는 사람들, 이런 야성(野性)이 건강한 사회를 지탱해준다고 나는 믿고 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아무 가치도 없는 시각적인 집착에서 구속되어 야성을 잃어가고 있다. 더욱이 균형감을 상실한 이 시대에서 칼날 같은 이성과 도전과 용기로 채워져야 할 젊은이들 가슴속에 들척지근한 단내만 풍길까봐 무척 염려스럽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